홍상수♥김민희만큼 당당했던 불륜 커플의 결말은? 잭슨 폴락의 뮤즈 루스 클리그만

홍상수 영화감독과 그의 뮤즈이자 연인인 김민희는 작품 활동을 함께 해오며 공식 석상에도 나타나 당당하게 자신들의 관계를 밝힙니다. 홍상수 감독이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아는 대중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행보인데요. 아티스트에게 뮤즈와의 사랑은 이리도 당당한 것일까요? 현대 추상화가 중 최고로 불리는 잭슨 폴락 역시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내를 두고 다른 연인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잭슨 폴락의 연인은 그리 지고지순한 것 같진 않네요. 잭슨 폴락을 비롯한 미국 화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인 루스 클리그만에 대해 TIKITAKA가 알려드립니다.

잭슨 폴락은 누구인가

잭슨 폴락은 1912년 미국에서 태어난 화가로 추상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데요.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기법인 '액션 페인팅'을 창안해 유명해졌습니다. 1947년부터 1952년까지 그의 작품은 미술계에 대변혁을 일으켰는데요.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같은 저명한 비평가들이 '현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라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미국 미술계에 뒤이어 등장하는 팝 아트 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2006년 No. 5(1948)가 1억 4,000만 달러에 팔리면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화를 기록한 적도 있습니다. 현재도 잭슨 폴락의 작품 가격을 더 오르고 있는데요. 20세기 문화의 아이콘이 된 잭슨 폴락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성공한 화가인 그의 인생도 개인적으로는 평탄하지만은 않았는데요. 알코올 중독, 우울증, 자살 시도, 음주운전 등 자기 파괴적 천재였던 잭슨 폴락에게는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내 리 크래스너와 그의 파괴적 동지이자 연인인 루스 클리그만이 있었습니다.

출처-경향신문

No. 5(1948) 출처-다음백과

우연인 듯 우연이 아닌 만남

루스 클리그만은 1930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58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아트 스튜던트 리그, 뉴스쿨, 뉴욕대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1956년 루스 클리그만은 작은 갤러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미술보다는 다른 쪽으로 야망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녀는 당시 미술계 친구에게 '지금 뉴욕에서 누가 제일 잘나가느냐'라고 물었고 친구는 '잭슨 폴락, 월렘 드 쿠닝 등이 잘나가는데 , 이들이 잘 모이는 곳이 8스트리트의 시더 바'라고 알려줬다고 하네요. 이후 루스 클리그만은 미술 작업은 그만둔 채 시더 바로 가서 잭슨 폴락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잭슨 폴락은 알코올 중독 때문에 맨해튼에 상담을 받으러 다녔는데요. 아내인 리 크래스너와도 갈등을 빚고 있는 중이라 둘은 금세 열정적인 연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출처-artnet Magazine

폴락이 죽은 뒤에도 계속된 당당함

루스 클리그만은 잭슨 폴락이 사망한 뒤 잭슨 폴락의 아내인 리 크래스너를 상대로 교통사고 부상에 대한 10만 달러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했고 그중 1만 달러를 받아냈는데요. 1974년에는 '정사 : 잭슨 폴락 회고록'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폴락과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회고록에서 폴락의 아내에 대해 '리 크래스만은 무시무시하고 분노한 여인으로 폴락을 위협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폴락의 아내인 리 크래스너는 '다섯 번의 섹스와 폴락'이라는 제목이 더 적합한 책이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리 크래스너와 잭슨 폴락

폴락의 라이벌과 연인되다

루스 클리그만은 잭슨 폴락이 사망한 뒤 그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월렘 드 쿠닝의 여자가 됩니다. 그들은 6년간 연인 관계를 지속하는데요. 월렘 드 쿠닝은 폴락이 죽은 뒤에도 그를 계속 라이벌로 느낄 만큼 폴락을 경계해 왔습니다. 실제로 월렘 드 쿠닝은 폴락 사망 이후 '이젠 내가 넘버 원이군'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1957년 그린 작품에 '루스와 조이'라는 제목을 붙이며 루스 클리그만과의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루스 클리그만과 월렘 드 쿠닝(출처-ArtStack)

미술계의 팜므파탈

6년 동안 지속된 월렘 드 쿠닝과의 연애 후에도 루스 클리그만의 화려한 연애사는 계속됩니다. 그녀는 폴락과 드쿠닝의 친구였던 추상화가 프란츠 클라인과 맨해튼의 스튜디오를 함께 사용했는데요. 1962년 클라인이 사망한 후에 그의 아파트 소유자가 되면서 과거 그와의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인 재스퍼 존스와 앤디 워홀에게 대담하게 대시해, 연인은 아니지만 친구 사이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출처-getty images

팜므파탈의 초라한 노년

루스 클리그만은 잭슨 폴락의 유작 'Red, Black and Silver'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그녀는 1956년 자신이 폴락에게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보여달라고 했고, 이에 폴락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이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리 크래스너가 관여했던 폴락 작품 감정위원회에서는 위원회가 해산할 때까지 이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남편의 전 연인으로서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루스 클리그만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클리그만은 결국 1984년 크래스너의 사망 후 다시 이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지만 진품 판명을 받지 못한 채 2010년 사망하게 됩니다. 클리그만의 노년은 미술계를 주름 잡던 팜므파탈 치고는 초라했는데요. 그저 보잘것없이 가난한 화가일 뿐이었습니다. 한편 'Red, Black and Silver'는 이후 클리그만의 유산 신탁위원회가 이 작품의 감정을 다시 의뢰해 드디어 진품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출처-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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