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도 모른 채 초등학교 입학했다는 경북 영주 소녀의 30년 후 근황

'금수저'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은 명확합니다.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사회적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특정 인물을 설명하는데 부모의 지위에 대한 비유를 덧붙이게 된 것이지요. 이는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에게 주어지는 교육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서울대 합격생 가운데 20% 이상이 강남 3구 출신이라는 사실만 보도라도 금수저와 흙수저를 구분할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서울대가 소위 '있는 집 애들만 갈 수 있는 학교'라면 하버드는 어떤가요? 국내에서 미국 명문대인 하버드에 입학하려면 우선 영어 실력이 기본일 테고, 영어유치원 출신의 금수저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하버드 출신 주인공은 영어유치원은커녕 한글조차 떼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골 소녀입니다.

경북 영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가정방문 학습지 외에는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놀라운 하버드생은 바로 금나나 교수입니다. 현재 동국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조교수로 활동 중인 금나나에게는 "미스코리아 진 출신", "하버드 출신" 등 항상 화려한 스펙이 꼬리표처럼 달려있는데요. 반면 미모부터 학력과 능력까지 모두 갖춘 그가 경북 영주의 시골 출신이라는 점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요.

금나나의 부모는 딸에게 출중한 미모와 함께 스스로 공부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물려주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금수저' 스펙을 준 케이스는 아닙니다. 경북 영주의 시골 중학교에서 부부 교사로 재직 중인 금나나의 부모는 딸이 하버드에 합격하기까지의 비법에 대해 오히려 "시골이라서 가능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금나나 어머니인 이원홍 선생님은 자녀교육법을 담은 책 '도시엄마를 위한 시골 교육법'을 통해 딸 금나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공부환경이 뛰어난 도시 아이들에 비해 시골 아이들이 불리한 것은 사실인데 '목마르면 우물을 파야'하는 상황 덕분에 오히려 자기주도적인 학습태도와 습관을 키웠다는 설명이었지요. 실제로 스스로 너무 졸라서 시작한 영어학습지 외에는 제대로 된 사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금나나는 한글도 깨치지 않을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공부하라"라는 잔소리 없이 자라면서 되려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늘어났습니다.

또 금나나의 어머니는 책에서 "나나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건 반드시 알아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였다면서 "학교 수업시간에 나나가 하도 질문을 해대는 통에 진도를 못 나가겠다고 담임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실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이어서 "한 반에 30명 가까이 되는 도시학교에서 이렇게 질문을 해댔다면 선생님도 나나도 힘들었을 텐데, 시골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했지요.

그러던 중 금나나는 중3 때 고등학교 진학을 두고 처음으로 어머니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언어적인 재능을 살려서 외고에 가길 원했던 어머니 의견과 달리 금나나가 과학고에 가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구미외고와 포항과학고를 두고 고민하던 당시 어머니 입장에서는 학업부담이 조금이라도 덜한 구미외고를 선택하길 바랐던 마음도 있었지요. 하지만 금나나의 결심은 확고했고 결국 어머니는 "꼴찌를 해도 좋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라는 약속을 받아낸 후 딸의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포항과학고 재학 당시 금나나는 성적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와 폭식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도망가는 대신 정면돌파했고 어머니 역시 걱정을 내색하지 않은 채 기다려주었지요. 덕분에 고등학교 학업을 무사히 이겨낸 금나나는 경북대 의예과에 합격했습니다.

"의사로서 봉사하기 위해 의대 진학"을 희망한 금나나가 합격 후 처음으로 한 일은 다이어트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씨암탉처럼 앉아서 먹고 공부하고 자고의 반복이었다"라고 말한 금나나는 대학 진학 후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100일 동안 10kg을 감량했지요. 다이어트에 성공한 금나나에게 체육교사인 아버지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을 추천했고 금나나는 큰 기대 없이 추억 삼아 도전에 나섰는데요.

그 결과 금나나는 2002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의대생 최초로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스스로는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것이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다"라고 표현하지만 미모와 지성을 갖춘 미인을 선발한다는 목표를 지닌 미스코리아 대회에 금나나는 대회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었지요.

다만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금나나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쳤습니다. 2003년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금나나는 글로벌 퍼스낼러티상을 수상하고도 예선에서 탈락했는데요. 당시에 대해 금나나는 2004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저보다 실력이나 외모에서 떨어지는 일본 대표는 본선까지 진출했다. 어이가 없더라. 치열한 국제사회의 한 단면을 본 거다. 정부는 국력을, 국민 개개인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경험은 금나나에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일깨웠습니다. 어렵게 합격한 의대를 포기하고 하버드 입시를 준비한 것인데, SAT의 수리과학 분야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금나나는 하버드대 생물학과와 MIT의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고 "국제사회에서 아시아라고 하면 일본과 중국만 생각하더라. 세계인들과 당당히 겨루기 위해 유학을 결정했다"라며 자신의 포부를 전했습니다.

흔한 어학연수도 한 번 거치지 않고 하버드 생활을 시작한 금나나에게 영어는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수업이 끝나면 강의 노트를 빌리러 다니기 바빴다는 금나나는 정신없이 1학기를 마친 이후 강의를 통째로 녹음해서 복습하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하루 서너 병씩 레드불 드링크를 마시며 밤을 새웠고 교수나 친구들에게 늘 "Help me"를 외치며 질문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그는 성적 상위 10% 이내 우수 모범 학생들에게 주는 디투어상과 존 하버드 장학금까지 거머쥐었습니다. 한국에서 의대를 포기하고 왔지만 여전히 의학이 다른 학문으로 이어가는 기본이라고 여긴 금나나는 미국에서의 의과공부를 위해 의과대학원에 도전했지요.

다만 미국 의과대학원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문이 좁기로 유명한데 전체 지원자 중 외국인 지원자는 약 2%, 합격자는 전체 합격자 중 0.52%에 불과합니다. 금나나 역시 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했지요. 4학년 2학기, 총 26개 의과대학원에 원서를 낸 금나나는 단 5곳의 면접 기회를 얻었고 그 조차 최종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대해 금나나는 "죽고 싶을 정도의 무기력함을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업도 안 듣고, 숙제도 안 하고, 술도 마시며 방황하는 날을 보냈지요. 스트레스로 인해 치신경이 죽는 바람에 극심한 통증을 겪기까지 한 금나나는 심각할 경우 치아가 다 빠져 틀니를 한 채 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겨우 스물여섯 살에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해봤는데 이 빠진 할머니가 될 수 없어. 게다가 난 미스코리아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유학생활을 접는 대신 컬럼비아 영양학대학원에 입학한 금나나는 석사 취득 후 다시 하버드로 돌아갔습니다. 2010년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 5년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해 영양학과 질병역학 두 분야의 박사과정을 밟게 된 것이지요. 당시 금나나는 박사과정 중 조교로 활동하면서 강단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질병 역학 관련 강의에서 매주 2시간 정도의 강의와 1시간 정도의 질의응답시간을 이끈 금나나는 학생들의 수강평가를 바탕으로 선발하는 우수조교상을 수상하며 강의 자질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금나나는 "강사로서 영어실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념을 그림과 모형으로 도식화해서 가르쳤더니 학생들이 더 좋아하더라"라며 "나중엔 수강문의가 쇄도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 덕분에 강단에 서는 보람을 느낀 금나나는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더불어 오랜 유학생활로 떨어져 지낸 부모님이 연로해진 모습을 보며 국내에서 활동하겠다는 결심을 한 금나나는 2017년 동국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강단에 서고 있지요.

최근 금나나는 각종 건강정보 프로그램과 예능 등에 출연하면서 영양학 전문가로서 활동 중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방송 출연에 나선 금나나의 여전한 미모와 실력 덕분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기도 했지요.

더불어 38세 골드미스 금나나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요. 20대이던 과거 이상형에 대해 "몸속 세포가 반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금나나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 여전히 결혼보다는 일에 집중하면서 불교 집안이어서 그런지 "인연을 믿는다"라며 여전히 인연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영양학 박사가 되어 대중들 앞에 다시 서게 된 금나나는 유튜브 활동까지 하면서 보다 친근하게 건강한 식습관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떡볶이를 먹은 다음날 "물과 아메리카노, 그리고 방울토마토로 부기를 뺀다"라며 자신의 일상 속 비법을 전하기도 하는 금나나의 이야기는 쉬우면서도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미스코리아 출신, 하버드 박사라는 타이틀보다 금나나의 강의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던 그의 경험들 덕분이 아닐까요? 시골 출신으로 특목고에서 탈모까지 겪었던 학창 시절,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10kg이나 감량했던 힘겨운 다이어트, 최고와 최악을 넘나들던 하버드 생활 등 힘겨웠던 경험들이 지금의 금나나를 만든 것처럼 누군가도 힘든 시간을 이겨내면 그와 같이 꽃길을 걷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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