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보다 먼저 할리우드 진출했던 여배우가 미국의 코로나 상황 전했다

미국과 유럽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는 때아닌 휴지 대란에 빠졌습니다. 이는 마스크를 만드는 재료가 화장지라거나 중국에서 수입이 끊겨 곧 살 수 없게 된다는 등 가짜 뉴스가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는데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미국의 휴지품절 사태에 대해 실제 상황을 전한 스타가 있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미국 현지의 상황을 전한 주인공은 바로 가수 출신의 배우이자 사업가 윤현숙입니다. 90년대 잘나가는 가수이면서 2000년대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던 윤현숙은 2008년 돌연 미국으로 떠나 현재까지 미국을 주 무대로 사업가로 활약 중이지요.

윤현숙은 20대 시절 배꼽티와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친구와 압구정을 활보해 '압구정동 쌍쓰레빠'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끼가 넘쳤는데요. 그랜드 백화점에 자주 나타나는 미인으로 소문이 나는 바람에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도 '그랜드 예쁜이'로 유명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국방차관보까지 지낸 군인 출신 아버지 때문에 연예계 진출을 꿈꾸지 못했지요.

때문에 부모님 몰래 가명을 사용해서 연예인 닮은 꼴을 찾는 프로에 김완선의 닮은 꼴로 출연한 것이 첫 방송 출연이었고, 이를 계기로 혼성 5인조 그룹 잼의 멤버가 된 윤현숙은 그룹 내 유일한 여성 멤버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잼 해체 이후에도 이혜영과 여성듀오 코코를 결성해 각종 CF를 섭렵한 윤현숙은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뛰어난 춤실력으로 남성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다만 그룹 코코는 1995년 2집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윤현숙은 연기자로 전향했습니다. 특집 단막극 ‘촛불 켜는 사람들'을 통해 첫 연기를 선보인 이후 연기 욕심이 생긴 윤현숙은 1997년에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이어서 미국 유학길에 올라 LA 산타모니카 칼리지 필름에서 2년 동안 영화와 마케팅을 공부에 도전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뒤늦은 나이에 10~20대 현지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몸무게가 43kg까지 빠질 정도로 체력적 한계를 느끼면서 유학 생활을 접었고 한국으로 복귀해 연기 활동을 재게 했지요. 비록 학업을 중도 포기하긴 했지만 유학 생활은 윤현숙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확인한 계기가 된 데다 할리우드 영화 출연의 소중한 경험까지 가능했는데요.

유학 당시 윤현숙은 산타모니카의 필름 페스티벌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가 영화 제작 프로듀서와 인연을 맺게 됐고, 경험 삼아 직접 작품에 출연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작은 배역이지만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600만 불 사나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리 메이저스 주연의 영화 '페이트'에서 경찰 역을 맡아 직접 대사까지 소화한 것이지요.

한국으로 돌아온 윤현숙은 ‘홍콩 익스프레스’, ‘원더풀 라이프’, ‘비밀남녀’, ‘90일, 사랑할 시간’, ‘메리대구 공방전’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연기 열정을 잃지 않았고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묵묵히 배우로서 성장해나갔지요.

그러던 중 윤현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소속사로부터 전속 계약 위반을 이유로 2억 8천여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한 것인데요. 소속사 측에서는 윤현숙이 소속사와 상의 없이 자신의 서명과 초상권을 이용한 사업을 벌이고, 급기야 방송 출연 계약을 독단적으로 체결했다며 계약 파기를 주장했고 윤현숙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 매니저가 벌인 일이라며 해명했지만 해당 매니저가 이미 회사를 떠난 상황이라 오해를 풀기 어려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시기에 윤현숙은 어머니까지 쓰러져 정신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윤현숙은 소송에는 승소했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결국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자리 잡은 곳이 유학시절 지내본 미국이었지요.

미국에 도착한 초반 삶에 대한 의지조차 없던 윤현숙은 SM 이수만 대표의 소개로 현지 지인들과 인맥을 쌓으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게 되었는데요. 특히 아버지까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윤현숙은 결혼이든 일이든 뭐든 성공해서 아버지를 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결혼이 아닌 일을 선택한 윤현숙은 연예계 활동 외에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인 패션 관련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지요.

앞서 드라마 '러브스토리인하버드'의 미국 로케이션 촬영 당시 김태희의 현지 스타일리스트를 맡아 작업했을 만큼 연예계에서는 인정하는 패셔니스타이니만큼 윤현숙은 자부심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가방 브랜드 Fabina LA는 미국 시장을 겨냥했지만 의외의 경로에서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요. 평소 친분이 있던 동료 배우들에게 협찬한 덕분에 국내에서 먼저 유명세를 얻게 되었고 덕분에 국내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에도 입점한 것이지요.

사업의 시작이 동료들 도움 덕분에 쉬웠다면 이후 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오롯이 윤현숙의 몫이었는데요. 윤현숙은 미국 현지 패션계를 발로 뛰며 직접 시장조사에 나섰고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은 소위 대박을 냈습니다. 특히 액세서리의 경우는 베버리힐스의 유명 백화점에서 러브콜까지 올 정도였지요. 당시만 해도 사업 초반이라 많은 물량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아 정중히 사양하고 포기했지만 윤현숙의 패션 감각이 미국 현지에서 '먹힌다'라는 인정을 받은 셈입니다.

한편 대중들 사이에는 소송 관련 내용이나 부모님과 관련한 개인사가 상세히 전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돌연 미국으로 떠난 윤현숙에 대해 국내에서는 결혼과 이혼설에 대한 수많은 루머가 떠돌기도 했는데요. 윤현숙 역시 "소문으로는 내가 결혼만 열 번 정도 했다더라"면서 사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결혼을 서둘러봤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인생의 힘든 고비를 넘기며 결혼이 아닌 일을 선택해 달려온 윤현숙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아이도 갖고 싶다"라며 친한 친구 이보영의 결혼식을 보고 눈물을 흘린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결혼식 당시 꽃 장식이 예쁘다고 감탄하는 윤현숙에게 변정수가 "언니 결혼식은 내가 해줄게"라고 위로하자 눈물이 쏟아진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친구이자 톱배우 이미연이 부럽다는 윤현숙은 여전히 일에 대한 욕심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연기자로서의 꿈을 놓지 못해 "인생의 대표작을 하나 만들고 싶다"라는 강렬한 소망이 있다는 윤현숙은 한국에서의 방송활동과 미국의 사업을 병행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다소 힘겨운 근황을 전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14일 윤현숙은 자신의 SNS를 통해 미국 현지의 마트의 텅 빈 진열대 사진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생필품과의 전쟁을 치르고 녹초가 되어버린 나. 결국 오늘도 휴지는 못 사고, 몇 가지 필요한 것만 간신히. 여기도 이제 시작인가요? 오늘은 조용히 집에서 쉬는 걸로"라는 글을 게재했는데요.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미국에서의 윤현숙의 도전이 꽃길을 걷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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