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애니콜 광고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 사람

가수 청하는 과거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댄서들과의 교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백댄서라는 말을 진짜 싫어해요"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힌 적이 있는데요. 이어 "제발 Back이라는 단어 좀 빼면 안 되나. 댄서분들도 같이 그림 만들어주시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자꾸 백댄서라는 말을 쓰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싫어요"라고 강조했습니다.

'백댄서'라는 표현 속에는 무대의 주인공은 가수이고 댄서는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일 뿐이라는 차별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댄서들에 대한 처우는 가수와는 비교할 수없이 열악한 실정이었는데요. SM, JYP, YG 등 대형 기획사에서 안무를 가르칠 정도의 실력파 댄서도 월 100만 원 안팎의 수입으로 찜질방을 전전하며 지낼 정도였지요.


대기실이 없어 복도에서 기다리는 생활에 지쳐 방송가를 떠났다는 댄서가 스트리트 댄스계에서 세계 챔피언을 차지하고 다시 방송가로 돌아오게 된 이유를 들어볼까요?


21살의 나이에 소녀시대, 현아, CL, 미쓰에이에게 팝핀을 가르쳤다는 댄스계의 레전드는 바로 리아킴, 김혜랑입니다. 84년생의 김혜랑은 어린 시절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고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자주 전학을 다니는 바람에 친구관계에서도 소극적인 편이었는데요. 그런 김혜랑에게 처음으로 "배우고 싶다"라는 열정이 들게 만든 것이 바로 마이클 잭슨의 무대였지요. 

중3 때 TV로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을 본 이후 아버지를 졸라 동네 청소년문화센터 댄스교실에 등록한 김혜랑은 처음으로 우월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아무리 들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과 달리 센터에서 배우는 춤 동작은 하나하나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했고, 입시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교 시절 김혜랑은 길 가다가도 지하철 안에서도 연습할 정도로 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김혜랑은 고3 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 있는 댄스 학원에 등록하면서 진로를 결정했는데요. "춤으로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사느냐. 대학은 나와야 한다"라며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대학가는 애들보다 열심히 살겠다. 스물한 살까지 무용, 영어 두 가지만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 그다음부턴 자립하겠다"라며 장문의 편지로 설득을 거듭한 끝에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지요.

그리고 김혜랑은 약속보다 1년 빨리 스무 살의 나이에 부모님의 지원을 끊고 자립했습니다. 늘 고된 춤 연습으로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시체', '찐따'라는 놀림은 당했어도 '날라리'는 아니었다는 김혜랑은 시간표를 짜서 아침부터 규칙적으로 학원을 다녔고 팝핀, 록킹, 보깅, 힙합, 재즈 등 온갖 춤을 마스터한 끝에 고등학교 졸업 직후 '위너스'라는 유명 댄스팀에 들어갔습니다.

경력은 적지만 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파로 소문난 덕분에 21살의 나이에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 트레이너로 일하게 된 김혜랑은 밤을 새워 하루 5팀씩 가르치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는데요. 그럼에도 한 달 수입은 고작 100만 원 남짓이었고 온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연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김혜랑은 땀범벅에도 샤워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2005년 이효리가 나온 삼성전자 애니콜 휴대폰 광고 '애니클럽' 제작 당시 김혜랑은 직접 안무를 짜고 댄서로 나서면서 안무가로서 존재를 알리게 되었는데요. 섹시 댄스를 앞세워 광고는 소위 대박을 쳤고 이후 이효리 2집 앨범의 안무를 맡으면서 태엽 춤까지 연이어 히트했지요.

하지만 정작 김혜랑은 그때 이후로 방송가에서의 댄서 생활을 접었습니다. 광고나 노래가 아무리 대박을 쳐도 대중들은 가수인 이효리만을 주인공으로 봤고 안무를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도 않는 상황에 회의를 느낀 것인데요. 일부 소속사 사장들은 안무가에게 반말과 하대를 일삼았고 방송국에서는 대기실이 없어 복도에서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지칠 만도 했지요.

방송가를 떠난 김혜랑은 스트리트댄서 FUNKY LIA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06년 스트리트댄스 세계대회 락킹 부문 우승, 2007년 세계대회 팝핀 우승, 락킹 준우승을 차지하더니 '4 da next level',  'UK B-boy' 등 세계적인 댄서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요. 다만 세계 무대를 석권하고 돌아온 김혜랑에게 국내 댄서계는 여전히 제자리였습니다. 서울 신천의 상가 지하에 연습실을 낸 김혜랑은 간이침대를 놓고 곰팡이와 함께 살아야 했는데요.

댄서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방송가와 연예계에서 여전히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김혜랑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말리는 도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2011년 오디션 프로인 '위대한 탄생 2'에 출연한 것인데요. 심사위원이었던 윤일상 작곡가에게 "노래를 너무 못한다. 이효리 춤 선생이고 세계대회 우승도 해 춤으로 이미 유명한 사람이 왜 굳이 가수가 되려고 하느냐"라는 독설을 듣고 탈락했지만 이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윤일상이 읊어준 김혜랑의 프로필이 홍보가 되어 안무가로서 보다 활발하게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같은 해 중국 댄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프랑스 댄스 영상 촬영 전문그룹 YAK이 찍은 자신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순식간에 20만 뷰를 찍는 것을 보고 김혜랑 역시 영상의 힘을 체감했는데요. 이후 스튜디오 '원밀리언'을 설립하고 소속 댄서들이 수업 때 짠 안무 영상을 유튜브에 찍어 올린 것을 시작으로 리아킴이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1MILLION Dance Studio는 지금까지 198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로 성장하게 되었지요.

윤일상의 본의 아닌 홍보 덕분에 안무가로서 돌파구를 마련한 이후에도 김혜랑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3년 댄스 오디션 프로인 '댄싱 9'에 참가한 것인데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소녀시대 효연과 유리는 김혜랑의 제자였고 제자가 심사하는 오디션의 참가자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김혜랑은 도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랜 시간 스트리트댄서로서 프리스타일의 배틀에 익숙했던 김혜랑은 안무를 외우지 못하는 치명적 실수로 오디션 초반 탈락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당시의 굴욕 덕분에 댄스에 대한 열정이 다시 끓어올랐다는 김혜랑은 초심으로 돌아가 방송댄스와 안무에 대해 새롭게 공부했고 그로부터 5년 후인 2018년 또 다른 댄스 오디션 프로에서 참가자가 아닌 심사위원으로 당당히 자리할 수 있었지요.

누적 조회 수 48억 뷰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K-POP과 K 댄스 전도사가 된 리아킴은 이제 방송과 언론이 주목하는 셀럽이 되었습니다. 트와이스의 T.T와 우아하게,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보름달, 가시나, 그리고 마마무의 HIP까지 이제는 기획사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안무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최고 안무가로 거듭났는데요.

최근에는 각종 예능에 출연해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요. 이제 대중들은 아이돌스타의 안무가가 아닌 아티스트 리아킴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10년째 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남자친구를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리아킴은 한 예능에 출연해 남자친구에 대해 "날짜를 잡은 건 아니지만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단계"라며 결혼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이어 남자친구에게 "부모님이 20년을 키웠다면 나머지 10년은 남자친구가 함께 있어줬다. 정말 고맙고 청혼을 기다리고 있겠다"라며 애정 담긴 영상편지를 보내 감동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리아킴의 성공에 대해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주목받으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댄서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 스트리트 댄서로서 세계대회를 석권하고, 최고의 자리에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오디션 프로에 참가하는 등 꾸준히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결과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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