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부터 소녀가장이었다는 여배우가 세 번이나 결혼 실패한 이유도 결국 돈?

이혼이 더 이상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지만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의 결혼 실패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잘나가던 여배우의 연이은 이혼 소식은 이슈가 될 수밖에 없지요. 다만 이혼 횟수만 놓고 단편적으로 이혼의 책임을 돌릴 만큼 결혼생활은 단순한 논리가 아닌데요.

13살에 데뷔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하이틴 스타가 돌연 결혼 소식을 전한데 이어 세 번이나 이혼해 충격을 준 속 사정을 들어봅시다.

72년생의 이상아는 1984년 13살의 나이로 연예계에 데뷔했는데요. 워낙 뛰어난 미모 덕분에 주변에서 연예계 진출을 권하는 일이 잦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학원 오디션을 봤다가 바로 다음날 캐스팅되어 데뷔작 'TV문학관-산사에서다'의 촬영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이후 이상아는 영화 '길소뜸', '방황하는 별들' 등에서 아역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다가 8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 '학창보고서', '얄숙이들의 개성시대', '너와 나의 비밀일기'와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을 통해 본격 하이틴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상아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팬덤이 존재할 정도였는데요. 당시 남자 중고생들의 3대 여신이었던 소피마르소, 브룩쉴즈, 피비케이츠의 대항마로 떠오른 한국판 책받침 여신이 바로 이상아였지요.

하지만 쉽게 데뷔하고 하루아침에 스타의 자리에 오른 듯한 이상아에게도 말 못 할 고충은 있었습니다. 바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었는데요. 당시 이상아의 아버지는 이상아를 포함한 세 자매를 키울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때문에 어린 이상아가 소녀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상아는 당시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일하는 걸 싫어했다. 엄마가 매니저 일을 봐주셨는데 하기 싫다는 날 혼내는 것이 일이었다"라며 힘들었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지요. 더불어 "한량인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두 자매를 부양해야 했던 소녀 가장이라는 짐이 무거워 도망치듯 첫 결혼을 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이상아는 한창 인기의 고공행진을 누리던 1997년 갑작스레 동갑내기 개그맨과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기에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시선도 많았지요. 당시 첫 번째 전 남편과 4개월간 연애를 했던 이상아는 연예계 활동에 지쳐있던 순간 다가온 상대에 대해 운명적인 감정을 느꼈고 다소 쉽게 결혼을 결정한 셈이었는데요. 심지어 결혼을 일주일 남긴 시점에 남자 쪽에서 결혼하지 말자고 했지만 이상아는 그를 설득해 결혼을 진행했지요.

불안하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결국 1년 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당시 이혼을 둘러싸고 '남자의 바람 때문이다', '이상아의 사치 때문이다' 등 루머가 많았지만 양쪽 모두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는 않았고, 결혼 전까지 여신의 이미지였던 이상아에게 이혼은 큰 타격이 되었지요. 최근 한 예능에 출연한 이상아는 당시에 대해 "자살을 몇 번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라며 힘들었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운명이라고 믿었던 상대와 결혼했지만 실패하고 연예계 활동까지 힘들어졌던 만큼 심적 고통이 심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혼의 아픔이 힘겨웠던 이상아는 제대로 된 가정을 꾸려서 이를 극복하고자 판단해 이혼 1년 만에 두 번째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운명적인 사랑만을 믿고 결혼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두 번째는 사랑보다는 조건을 내세운 결혼을 선택했는데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상대를 선택했고 하루빨리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자녀계획도 빨리 세웠지요.


덕분에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당사자들에게는 계획 임신이었으나 언론에는 '여배우의 혼전임신'이라는 타이틀이 자극적인 기사 소재로만 이용되는 바람에 결혼 당시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요. 게다가 안정적일 것으로 믿었던 남편의 경제적 상황이 결혼 직후 기울면서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커졌는데요. 당시 이상아는 남편의 사업 보증을 다 서준 상태였고 협박전화에 생계까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상아는 결혼 1년 7개월 만에 두 번째 이혼을 하게 되었지요. 당시 이상아는 이혼 사유에 대해 남편이 거짓말을 많이 했고 남편의 빚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전한 반면 남편은 '이상아의 바람기'때문에  이혼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혼의 책임을 두고 싸움이 날 정도로 남편과 사이가 나빴던 이상아는 딸의 돌잔치 사진만은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이혼 직전 돌잔치를 진행하고 그 직후 이혼했습니다.

이혼 직전에도 돌잔치 사진을 남길 정도로 애틋했던 딸이었기 때문일까요? 이상아는 세 번째 결혼을 오로지 딸을 위해서 결정하게 되는데요. 딸이 더 크기 전에 새아빠를 만들어줘야겠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우며 힘들었던 이상아는 곁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남성과 결혼을 결심했고 세 번째 결혼은 13년간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상아는 결국 버티다 버티다 빚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는데요. 2016년 세 번째 이혼 후 방송에 복귀한 이상아는 "세 번째 이혼만은 하기 싫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심적으로나 물적으로 13년이나 노력했다"라며 절실했던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남은 인생은 딸을  위해 살겠다"라고 밝혔는데요.

평범한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다는 이상아가 딸에게 물려준 귀한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엄마를 꼭 빼닮은 미모 유전자입니다. 이상아의 딸 윤서진은 엄마 이상아의 리즈시절 못지않은 청순하고 매력적인 미모를 자랑하는데요. 거기에 남다른 패션감각과 메이크업 실력까지 갖춘 덕분에 5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SNS 스티이지요.

이상아와 함께 예능에 출연한 윤서진은 SNS 활동을 통한 자신의 수입이 월 수백만 원 대라는 사실을 밝혀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는데요. 더불어 해당 방송에서 윤서진은 엄마 이상아에 대해 "세 번 이혼했는데 네 번은 못하겠느냐"라며 재혼을 반대하는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윤서진은 공백기를 깨고 원하는 연기를 하는 엄마가 안 좋은 일로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까 봐 걱정했는데요.

딸을 위해 살겠다던 이상아에게 딸 윤서진은 더 이상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위로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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