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제치고 PC 시장서 1위 하던 업체가 대박템 이후 잠잠한 이유

페이스북보다 먼저 나와 2000년대 우리나라를 장악했던 1세대 SNS 싸이월드의 서비스 중단 위기는 충격적인데요. 한때 월 이용자가 20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모바일 시대로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한순간 몰락의 길을 걸었지요. 한편 국내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열었던 이 업체 역시 원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양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때 삼성전자보다 잘 나갔다는 삼보컴퓨터의 흥망성쇠를 돌아볼까요?


삼성전자보다 잘 팔리던 PC

박찬호와 함께 외환위기도 넘겼다

삼보컴퓨터는 1980년 이용태 회장이 자본금 천만 원을 들고 시작한 삼보엔지니어링이 그 전신인데요. 직원 7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는 설립 6개월 만인 1981년 1월 국내 최초의 PC SE-8001을 내놓으면서 삼보컴퓨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 금성(현LG)과 현대, 삼성 등 대기업이 PC시장에 진출하면서 국산 컴퓨터 붐이 일었고 그 가운데 삼보컴퓨터는 원조이면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었지요.

다만 1997년 외환위기 상황으로 PC시장 역시 침체를 맞이했는데요. 삼보는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 드림시스 컴퓨터의 CPU와 메인보드를 2년 후 새것으로 교체해준다는 '체인지업'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이벤트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박찬호 선수가 메인모델로 발탁되어 더욱 화제가 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삼보의 체인지업 이벤트는 불황기를 겪고 있던 국내 경제 사정을 마케팅으로 정면 돌파해 효과를 거둔 사례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미국 PC시장 3위 달렸지만

애플 소송에 발목 잡혔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활로로 삼보는 미국시장 진출에 도전했습니다. 1999년 삼보는 코리아데이타시스템(KDS)과 미국 내 합작사인 이머신즈를 설립했는데요. 당시 대당 1000달러 수준이던 PC시장에 삼보는 이머신즈의 이름으로 500달러 미만의 저가형PC를 내놓았고 미국저가PC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이머신즈는 낮은 가격과 더불어 AOL과 제휴해 '6개월 무료 인터넷서비스'를 함께 제공한 덕분에 단숨에 판매 100만 대를 넘었고 1999년 상반기 미국 내 PC시장 점유율 10%를 기록하며 3위에 올라섰습니다. 

이머신즈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세를 보이자 미국 내 PC업체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컴팩을 인수한 HP는 1999년 이머신즈가 컴팩의 특허 9건을 침해했다고 텍사스 법원에 제소했고, 애플은 이머신즈의 일체형 PC eONE이 자사의 아이맥을 베꼈다고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고소했는데요. 특히 애플은 일본 도쿄지법에 이머신즈의 일본 내 제휴업체 소텍까지 제소하며 압박을 가했습니다.


당시 삼보 관계자는 "삼보 내부에서 애플의 소송은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이다"라며 IBM 호환기종인 저가형 eONE과 아이맥은 운용체제가 다르며 고객층도 차별화되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라는 입장을 전했는데요. 애플이 주장한 것처럼 소비자들이 혼동해 아이맥 대신 eONE을 구매할 가능성은 없으며 당시 일체형 반투명 디자인은 업계 트렌드라는 주장을 펼쳤지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해 8월 일본 법원이 이머신즈의 일본 판매법인인 소텍에 대해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고 미국 내에서의 소송도 2000년 3월 애플의 승리로 끝났는데요. 이후 이머신즈는 실적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4년 경쟁사인 게이트웨이에 팔렸으며 2007년 다시 대만 에이서로 넘어갔습니다.


되찾은 삼보

한국판 샤오미 되겠다

삼보가 미국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삼보는 국내에서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주력했습니다. 1996년 한국전력과 삼보컴퓨터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두루넷이 1999년 국내 최초로 나스닥에 직상장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후 한국전력의 또 다른 통신 자회사인 파워콤이 등장하면서 두루넷의 주식은 하루아침에 폭락했고 두루넷이 자금을 빌릴 때 보증을 섰던 삼보컴퓨터 역시 2005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법정관리 후 삼보컴퓨터는 2008년 이용태 회장의 차남인 이홍선 대표가 다시 인수해 재기에 나섰는데요. 계열사인 TG앤컴퍼니는 모바일 중심 시장 트렌드에 발맞춰 스마트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2015년 '루나폰'이 소위 대박을 치면서 삼보의 시대가 다시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요.  

2015년 9월 TG앤컴퍼니가 내놓은 루나폰은 출시 열흘 만에 초기 제작물량 3만 대가 소진되면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해 연말 기준 누적 판매량은 15만 대를 넘어섰고 판매량 기준 국내 전체 스마트폰 순위 10위를 달성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삼성과 애플 폰이 80~100만 원대의 출고가인데 반해 45만 원이었던 루나는 가성비 좋은 폰으로 불렸고, 중국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피하면서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된 것이지요.


혁신보다는 안정 택했다


다만 "한국판 샤오미가 되겠다"라던 이홍선 대표의 포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삼보는 2016년 루나의 후속으로 루나S를 내놓은 후 스마트폰 사업보다는 PC사업에 집중하는 모양새인데요.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데스크탑PC를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 입찰을 막은 덕분에 정부 조달시장이 안정적인 시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삼보는 안정적인 정부 조달시장을 선택했고 스마트폰 사업을 위한 혁신을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삼보의 영업이익은 2016년 914억 원이던 것이 2018년 1047억 원으로 늘기도 했는데요. 다만 연구개발(R&D) 비용을 꾸준히 줄이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은 더욱 낮아 보입니다. 게다가 안정적인 시장으로 여겨졌던 조달시장에서의 점유율도 줄어들고 있는데요. 2015년 31.6%였던 조달시장 시장점유율이 2018년 22%로 줄어들면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요.

국내 PC시장의 원조였던 삼보의 루나폰 성공은 급변하는 IT시장에서 살아남은 국내 기업의 재기라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는데요. 중국 샤오미에 대항할 만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길 바랐던 것과는 달리 혁신보다 안정을 택하면서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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