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이클잭슨으로 불리던 가수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 때문?

화가 이중섭은 작년 3월 싸우는 소를 그린 작품이 47억 원에 낙찰되며 김환기 다음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는데요. 미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이중섭은 정작 생전 활동 당시에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비운의 예술가이지요.

최근 옛날 방송 다시 보기 열풍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은 가수 양준일 역시 시대를 너무 앞서간 바람에 활동 당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꼽히는데요. 한 예능 프로를 통해 무려 28년 만에 방송에 등장한 양준일이 과거 차별과 편견에 맞서 힘들게 활동했던 경험을 털어놔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탑골 GD로 불릴만한
파격적인 패션

교포 출신의 가수 양준일은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중 작곡가 이범희의 눈에 들어 한국 가요계에 진출했습니다. 양준일이 데뷔했던 1991년 한국가요계는 신승훈의 '미소속에비친그대'와 이범학의 '이별아닌이별' 등 발라드곡이 대세였고, 댄디한 분위기의 남자 가수들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등장한 양준일의 스타일은 파격 그 자체였지요.

큰 키에 깡마른 몸,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양준일은 패션 센스 역시 남달랐는데요. 1집 히트곡 레베카 활동 당시 화이트 셔츠에 딱 붙는 화이트진을 입은 모습이나 오버사이즈의 꽃무늬 셔츠를 걸치고 나온 모습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유니크함을 자랑합니다.

게다가 단발에 가까운 긴 머리에 웨이브를 넣어 자연스럽게 흐트러뜨린 모습은 무대 위에서 자유분방한 양준일의 개성을 드러내는데 안성맞춤이었는데요. 주로 정장이나 재킷을 입고 무대에 서던 신승훈, 심신, 이범학 등 당시 가수들과 비교하면 양준일의 패션은 충격적일만하지요.


듀스보다 앞선 뉴잭스윙

양준일은 음악 스타일 역시 대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리나라 뉴잭스윙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듀스의 '나를돌아봐'가 1993년 4월 정식 발매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보다 1년 넘게 앞선 1991년 8월 등장한  양준일의 레베카는 우리나라에 뉴잭스윙의 매력을 미리 맛 보여준 곡인데요.

이후 내놓은 'Dance with me 아가씨'와 '가나다라마바사' 역시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곡이었고, 특히 미국 음악을 기반으로 한데다 한국어가 서툰 양준일이 직접 작사를 맡아 영어 가사가 많았던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어 가사들이 당시에는 심의에 걸려 방송정지를 당하기까지 한 것인데요. 당시 영어 가사를 문제 삼는 방송국에 양준일은 방송국 이름은 왜 죄다 영어냐며 항변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시대를 앞서간 음악 스타일에 대해 양준일은 자신은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서 "나는 노래를 목소리로 10% 표현하고 90%는 몸으로 표현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무대 위에서 양준일이 보여준 퍼포먼스와 무대연출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리듬에 맞춰 슬쩍슬쩍 몸을 움직이기만 하는데도 세련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양준일의 무대는 최근 가창력보다는 자신만의 개성과 표현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에 어울리는 느낌이지요.


혐오의 대상이 된 비운의 천재

슈가맨3에서 유튜브를 통해 양준일의 과거 무대를 본 적이 있다고 밝힌 한 10대 방청객은 양준일의 과거 무대 영상을 보고 "최근 영상에 필터를 입힌 줄 알았다"라는 감상평을 내놓았습니다. 30년 전 무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세련되었기 때문인데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까요? 양준일은 활동 당시 음악성과 무대연출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다양한 편견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교포 출신이면서 미국 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도를 한 양준일의 음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팝도 가요도 아니다"라는 비난을 내놓았고, 당시 인기를 끌던 최수종, 장동건 등 조각미남과 달리 여리여리한 외모에 장발을 고수하는 그의 스타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이 많았지요. 외부 행사에 참가해 무대에 오를 때면 돌과 신발 등이 날아올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활동 중 수많은 편견에 맞서 고생하던 양준일이 2년여의 가수 활동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떠난 이유 역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양준일은 교포 출신이 자 미국인이라 10년짜리 비자를 들고 한국에서 활동을 하던 중이었고 6개월마다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도장을 받아야만 했는데요. 당시 담당자가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라며 비자 갱신을 해주지 않아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황당한 이유로 음악 활동을 접게 된 양준일은 2001년 V2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의 가수 활동을 재개했는데요. 레베카 활동 당시로부터 10년이 지난 덕분인지 양준일의 새로운 곡 'Fantasy'는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다만 함께한 당시 소속사에서 다양한 조건을 내걸며 방송에 제약을 둔 바람에 방송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또 한 번 가수 활동에 좌절을 맞게 되었지요. 결국 가수의 꿈을 가지고 어렵사리 한국에 돌아왔지만 계약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양준일은 경기도의 한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며 지내는 신세였습니다.


20대 양준일 VS 50대 양준일

1990년대 초반 한국 가요계에서 외면당했던 양준일은 무려 28년이 지난 2019년 유튜브를 통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영상을 통해 부활한 양준일의 무대는 10대들 사이에 GD 닮은 꼴로 불리었고 방송가에서는 그를 섭외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는데요.

오랜 고민 끝에 최근 슈가맨3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양준일은 자신에 대한 관심에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은 20대의 나인데, 50대가 된 내가 20대의 나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지 고민했다"라며 방송출연에 고민이 많았음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결혼해서 4년 전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양준일은 현재 아내가 영어가 서툴러 가족을 두고 한국에 오기 힘든 데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어 일을 중단하고 올 수 없었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지요.

제작진의 오랜 설득과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고심 끝에 출연을 결심한 양준일은 여전히 세련되고 개성 있는 자시만의 무대를 선보여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는다. 좋은 남편과 아빠로 살고 싶다"라며 당당한 소신을 밝히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양준일의 SWAG가 느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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