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료받은 의사가 알고 보니 조현병 환자?" 취소도 안되고 정년도 없다는 의사면허

지난 2016년 강남역에 위치한 한 실내포차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는 "실내포차에서 서빙일을 하다가 이틀 전 포차 근처 공터에서 한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가 자신의 발에 맞은 일 때문에 화가 나 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라는 황당한 범행 경위를 밝혔지요.

2018년에는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대낮에 교무실로 무단 침입해 초등 4학년 여학생에게 흉기를 들이밀며 인질극을 벌인 이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질극은 1시간여의 경찰과의 대치 끝에 인명피해 없이 끝났는데요. 해당 사건의 피의자는 "군 복무 중 가혹행위로 뇌전증과 조현병이 발병했는데 국가보훈처에서 이에 대한 어떤한 보상도 해주지 않아 마지막 수단으로 인질극을 벌였다"라고 밝혔지요.

앞서 언급한 두 사건은 일면식도 없는 여성과 아이를 상대로 한 무자비한 범죄행위라는 점 이외에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들이 모두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던 조현명은 환청이나 환각 같은 증상을 앓으면서 불안도가 높아지고 이 때문에 폭력성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자진신고 0건
실제 진료는 수십만 건

물론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데다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것도 사실인데요. 다만 아무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현병 환자가 의사로서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지요.

현행법상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의사는 진료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의료법 제8조제1호에서는 정신보건법 제3조제1호에 따른 정신질환자를 의료인이 될 수 없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자진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고 실제로 지난 5년간 자진 신고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지요.

자진 신고 건수는 0이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최근 3년간 치매 또는 조현병을 앓고 있으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심평원에 진료 명세서를 청구한 건수는 최대 156만 건인데요. 특히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의사는 2016년 53명, 2017년 47명, 2018년 49명이었으며 2019년 상반기에는 40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사들 반발로 해당 법안 방치

이에 대해 인 의원은 "의료법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의료인 결격사유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의사들은 이를 숨기고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면서 "진료행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료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질환 여부에 대한 체계적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는데요.

이러한 주장은 이미 2016년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들 주도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개정안에는 의사들이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할 때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만약 거짓으로 신고하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지요.

하지만 해당 법안은 진행되지 못하고 방치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법안을 낸 의원실에서는 의사들 반발이 거셌다고 답했는데요. 실제로 국회 보고서를 보면 대한병원협회는 "의료행위를 불가능하게 하는 질환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다"라는 점을 이유로 반대했고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거짓 신고만으로 면허를 취소하는 건 과도하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의사들의 반대에 굴복해 법안의 진행이 막힌 것이지요. 반면 미국에서는 의사들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를 2년마다 점검해 면허를 갱신해 주고 있습니다. 캐나다 역시 별도의 면허관리 기구가 의사들의 병력을 관리하고 환자는 의사 이름만 치면 병력을 검색해 볼 수 있지요.


정년 없는 의사면허
치매 걸리면?

최근에는 나이 많은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치매를 앓는 의사들의 면허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의사면허에는 정년이 없다 보니 60~70대까지도 의료 행위를 이어가는 의사들이 많은데요. 고령 의사들의 경우 자연스럽게 치매 등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크고 이는 고도의 판단력을 요하는 의료 행위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지난 2015년 발생한 'C형 감염 집단 감염 사태'의 경우 해당 병원장이 조사 중 털어놓은 말은 굉장히 충격적인데요. 해당 병원장은 "3년 전 뇌내출혈을 겪은 뒤 거동이 어려워졌고 손도 많이 떨렸다"라며 "주사기를 써야 할 때마다 새 주사기를 가져오고 포장 상태에서 꺼내는 게 번거로워 주사기 재사용을 반복했다"라고 진술한 것입니다.

해당 병원장의 경우 교통사고로 인해 뇌병변장애 3급, 언어장애 4급의 판정을 받고 누군가의 부축이 아니면 움직이기 힘든 정도였는데요. 명백한 결격사유에도 불구하고 현행 의료법은 해당 병원장의 의료 행위를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나 장애등급 판정이 아닌 고령으로 인한 치매 등 질환의 경우에는 더욱이 찾아내기 어렵겠지요.

자진신고나 고발이 아니라면 적발하기 힘든 상황, 더불어 적발되어 면허취소가 되더라도 집행기간 2~3년이 지나면 대부분 의사로 다시 활동하게 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환자를 보호하기 어렵습니다. 수동적인 현재의 의사면허 관리 시스템이 보다 합리적으로 변화하는데 의사들 역시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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