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무관, 여성 우대'라더니 화장실 가는 시간도 보고하라고?

경제 상황 악화의 여파로 기업들마다 채용인원을 줄여나가는 요즘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채용공고를 내는 직종이 있습니다. 특히 '연령 무관, 고졸 이상, 여성 우대' 등의 모집 요강은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재취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눈길을 끄는데요.

진입장벽이 낮다고 소문난 이 직종은 바로 콜센터 상담원입니다. 실제로 콜센터의 경우 전화 응대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연령 기준도 자유롭고 표준화된 업무로서 훈련을 통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업무를 다루게 되는데요.

콜센터 상담원의 채용 역시 여느 직종들처럼 서류 전형부터 면접과 신입사원 교육을 거치는 채용 과정이 있긴 하지만 중도 탈락자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상담원이 미달되어 연이어 채용공고를 내는 이유는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던 콜센터 상담 업무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이와 관련한 다소 충격적인 취재 결과가 눈에 띕니다.

최근 SBS에서는 콜센터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콜센터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관리자들의 폭력적인 업무방식을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콜센터 업체가 상담원들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통제한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한꺼번에 화장실을 가버리면 콜이 밀린다는 이유로 10명으로 구성된 팀원들 중 화장실은 한 번에 한 명으로 제한해 놓았습니다. 그마저도 시간을 체크해 데이터로 내리고 근무실적으로 반영하는데요. 화장실 사용을 비롯해 잠깐 허리를 펴고 휴식이라도 취할 경우 자리를 비운 시간 모두가 전선에 입력되어 근무실적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연차휴가나 조퇴 등 당연한 권리 역시 보장받기 어렵다고 하는데요. 몸이 안 좋아 조퇴를 내고 병원을 가려고 해도 일정 근무시간을 모두 채워야 가능하며 연차를 쓰면 결근 처리되어 주휴수당 및 일당도 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상담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모든 근무상황을 체크하고 이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관리자의 억압적인 관리 방식인데요.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체크해 근태를 관리하고 높은 수준의 콜 실적을 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관리자들의 폭력적인 언행과 공개적 망신주기 등은 관행처럼 이어져 오고 있지요

이와 같은 콜센터의 업무환경과 문화는 직장 내 우위의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방지하는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완전히 위배되어 보이는데요. 해당 법안이 지난 7월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지만 콜센터의 환경은 변화한 바가 없습니다.

대부분이 아웃소싱 업체인 콜센터들의 경우 계약 중인 기업에서 매년 실적을 비교, 평가하여 도급비를 재산정하고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실적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때 실적 평가에는 정해진 인원에 따른 콜 처리율이 집계되고 이로 인해 아웃소싱 업체는 상담원들에게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심지어 팀별 실적을 합산하여 평가를 하는 바람에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상담원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과도한 업무를 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결국 높은 업무 강도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매달 수많은 퇴사자가 발생하며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콜센터는 매달 다시 공개채용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불합리한 관리 방식이 일부 콜센터 관리자들의 인성 문제가 아닌 실적 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로부터 나온다는 점인데요. 아웃소싱 업체들 간의 실적 경쟁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재의 관리 방식이 변화하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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