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체대 졸업생이 스포츠 아나운서 거절하고 선택한 길

자신의 직업에 99.9%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낮은 편이라고 소문난 직종에서는 불평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일에 대한 자부심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부족한 처우를 개선하는데 한몫하고 싶다는 당돌한 포부를 가진 7년 차 직장인이 있습니다. 

숙소 생활을 하면서 밥 먹는 시간까지 업무시간이 되지만 자신의 일이 너무 좋다는 주인공은 스포츠 통역사 최윤지 씨입니다. 대중들에게는 지난 7월 열린 도쿄올림픽의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통역사로 익숙한 최윤지 씨는 대표팀을 맡기 전부터 이미 여자프로배구 팬들 사이에서 꽤 유명인사라고.

2015년 KGC인삼공사 통역으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현대건설, 흥국생명 등에서 외국인 선수의 통역을 맡은지가 벌써 7년이 넘은 배구 통역단의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선수 출신이 아닌 만큼 윤지 씨도 일을 시작하고 3년 가까이는 '배구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습니다.

91년생인 최윤지 씨는 어린 시절부터 예체능에 재능을 보였고 태권도, 현대무용, 발레 등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체육학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윤지 씨는 대학입시에서도 체육학과만 지원했고, 한양대 체육학10학번으로 공부하면서 스포츠 교육자, 팀 트레이너 등으로 진로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중 최윤지 씨가 스포츠 통역을 처음 접한 건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졌다는 윤지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영어 라디오를 듣고 미국 유아용 TV 프로인 Sesame Street를 보면서 운동처럼 감각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어학을 전공하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학업을 마친 적이 없음에도 윤지 씨는 통역 아르바이트에 도전할 수 있었고, 패션행사나 미디어포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역을 경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 통역은 경기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지요.

대학 4학년 시절 1년 동안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운 경험 외에는 따로 어학공부 기회가 없었다는 최윤지 씨는 국내에서 쌓은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스포츠 통역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평창올림픽 국제 미디어 포럼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현장에 있던 KGC 인삼공사 통역 담당자가 구단 입사를 제의한 것이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2015년 3월 졸업하자마자 5월 KGC 인삼공사 배구단 통역가로 들어간 윤지 씨는 서류와 면접과정을 통과한 비결에 대해 "(어학실력보다는)감각적으로 스포츠 전문 용어를 신속하게 통역할 수 있는지가 주요했다"고 말합니다. 체육학과를 졸업해 전문 용어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인데요. 다만 체육학과 출신인 윤지 씨도 배구선수 출신은 아니다 보니 일을 시작하고 2~3년간은 전략 분석관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면서 배구 현장을 익히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3년차부터 '배구를 좀 알겠다'라고 느꼈다는 윤지 씨는 팀 내 통역가로서 역할에 대해 "사실상 통역 업무는 아주 일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외국인 선수 혹은 코칭스텝과의 의사소통을 돕고 외국인 관련 모든 업무를 도맡아야 하는데 "공항 픽업, 서류작업, 한국 적응 돕기 등 외국인 선수와 '한 몸처럼' 지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외국인 선수 한 명을 전담하다 보니 통역이 아닌 사람 자체가 업무가 되는 것이죠.

비시즌 기간 중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는 최윤지 통역가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배구단 통역가는 시즌 중인 8개월간은 선수 스케줄에 맞춰 합숙까지 하는 반면 시즌이 끝난 후 4개월 동안은 프리랜서 통역가로 개인 활동이 허용됩니다. 다만 시즌 중에는 꼭 필요한 인력이지만 8개월만 일하기 때문에 고정 스태프가 아닌 언제든 새로 뽑을 수 있는 대체 인력이라는 인식도 존재하는데요. 최윤지 씨 역시 이러한 처우 때문에 팀을 자주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윤지 씨가 통역 일을 이어가는 것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의 짜릿함 때문입니다. 눈에 띄는 미모 덕분에 스포츠 아나운서 제의를 받은 적도 있지만 힘든 합숙생활을 선택한 윤지 씨는 올해 국가대표팀의 통역을 맡으면서 명실상부 국내 최고 배구 통역가로 인정받은 셈이죠.

도쿄올림픽 기간

한편 최윤지 통역가는 국가대표팀 통역 제안을 받은 후 라바리니 감독의 영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와 관련된 영상을 모두 찾아봤다고 하는데요. 라바리니 감독이 온 이후 모든 경기 영상들 2019 VNL, 아시아배구연맹(AVC) 아시아선수권, 올림픽 최종예선, 월드컵까지 모든 경기를 보며 작전타임에 감독이 하는 말을 받아 적은 것은 물론 이탈리어어나 스페인어로 된 배구 훈련에 대해 발표한 세미나 영상까지 공부했다고.

최윤지 통역사의 이러한 열정을 알기에 소속팀 현대건설에서는 올림픽 시즌을 기다리고 이후 팀으로의 복귀를 허락했습니다. 현재 윤지 씨는 현대건설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야스민의 통역사로 활약 중인데, 예능프로를 통해 공개한 윤지 씨의 업무일상은 야스민 선수의 매니저이자 친구,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한 모습. 

통역부터 훈련코치의 역할까지 전담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분에 야스민 선수는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며 MVP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이에 최윤지 씨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1점을 내기 위해 피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일을 좋아했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자신의 일에 99.9% 만족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포츠가 너무 좋다. 거기에 내가 한 부분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짜릿하다"라고 말했죠.

instagram@choi.go.yunji

다만 앞으로 목표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면서도 "스포츠 통역사의 부족한 처우 개선에 대해 노력하고 싶다"라는 포부도 덧붙였는데요. 선수 못지않은 스포츠 정신으로 경기장을 누비는 통역사 최윤지 씨가 단순히 팀에 고용된 계약직이 아닌 원팀으로서 인정받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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