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억 매물로 나온 한신포차 1호점이 백종원에게 특별한 이유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만든 대표 외식업체 브랜드 중 하나인 한신포차의 1호점이 23년여 만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한신포차 1호점이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물이 최근 350억 원에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인데요. 해당 건물은 더본코리아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입니다. 건물주는 백 대표와 1998년 한신포차를 세운 동업자로, 백 대표가 나간 이후로도 해당 건물에서 계속 운영을 해왔지요.

한신포차 1호점(논현점)

하지만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매출이 급감함에 따라 건물을 매각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한신포차 1호점은 본사에서 운영하는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 형태로 영업하던 것이라 더본코리아와는 실질적인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한신포차 1호점의 폐점이 특별한 아쉬움을 주는 데는 해당 점포가 백종원 대표의 재기의 발판이자 성공의 초석이 된 곳이기 때문.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다니면서
치킨집 인수한 알바생

사업부터 방송까지 해내는 모습을 100종원으로 표현한 브이포 광고 속 장면

2021년 3월 기준 연 매출 1,347억 원, 전국 1,770여 개의 점포를 가진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다만 백종원 대표가 요식업계 대부가 되기까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시절 / 대학교시절

학창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는 백종원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돈 버는데도 관심이 많아 스스로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하는데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 친구 형이 하는 중고차 장사를 따라가서 소위 '삐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 40분 만에 첫차를 팔 정도로 타고난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는 백종원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돈 버는데도 관심이 많아 스스로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하는데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 친구 형이 하는 중고차 장사를 따라가서 소위 '삐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 40분 만에 첫차를 팔 정도로 타고난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연세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백종원이 한 아르바이트 중에는 압구정에 위치한 한 치킨집도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주인이던 이 업체는 배달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백종원은 할머니를 설득해서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백종원은 직접 손글씨로 쓴 전단지를 인근 아파트에 돌리면서 홍보했고 그 결과 치킨집은 대박이 났습니다.

당시 '치킨 배달에 콜라서비스' 아이디어 낸 백종원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주인 할머니가 건강상 이유로 가게를 내놓는 상황이 되었고, 가까이서 백종원의 사업 수완과 열정을 지켜본 할머니는 백종원에게 "벌어서 갚으라"라며 가게인수를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겁 없던 아르바이트생 백종원은 실제로 해당 치킨집을 인수해 1년도 채 되지 않아 인수자금을 모두 갚는 것은 물론 3개 점포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15억 원 이상 자산을 형성했습니다.

이후 백종원은 사업가로서 자신감을 얻은 김에 나이트클럽을 인수하려고 나서기도 했는데요.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고 되레 반강제로 군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취사병으로 변신한 포병장교

포병장교로 입대한 백종원은 뛰고 운동하는 걸 워낙 싫어한 탓에 군 생활이 고역이었습니다. 게다가 입대 후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는 사업이 꼬여 모두 헐값에 처분했고 사업을 하면서 모았던 15억 원 상당의 자산 역시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부분 잃은 상황이었지요.

학업도, 사업도 꼬이고 원치 않는 군 생활까지 시작하게 된 백종원에게 유일한 낙은 간부식당에서 먹는 식사였는데, 그 조차 입맛에 맞지 않자 백종원은 취사 담당 선임하사와 은근슬쩍 보직을 바꾸어 간부식당 관리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선배 장교들은 "장교가 쪽팔리게 무슨 짓이냐"라며 욕했고, 보직을 임의로 바꾼 것에 대해 장군에게 불려가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백종원은 "평시에는 간부도 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음식이 전투력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장군을 설득해서 취사 보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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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백종원에게 군 시절은 요리와 장사에 대한 다양한 개념이 잡힌 배움의 시기였습니다. 백종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비가 오면 배춧값이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내리면 트럭을 몰고 시장에 나가서 배추를 싸게 대량으로 사들여 염장을 했다. 덕분에 식재료비를 아끼니까 비싼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다."라며 군대에서 사입의 요령을 깨쳤다고 전했습니다.

이외에도 백종원은 간부식당을 배급식이 아닌 뷔페식으로 운영하는 최초의 시도를 했으며 효율적인 메뉴 구성과 식단 편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는데요. 덕분에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장군이 제대를 앞둔 백종원에게 1년만 더 하고 가라며 농담을 할 정도로 인정받았습니다.

17억 빚더미에 오르게 한
사업 아이템

제대 후 백종원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습니다. 다만 당시 백종원에게 사업이란 요식업은 아니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음식장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백종원 역시 식당 일은 사업 축에 들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993년 개업한 쌈밥집

때문에 백종원은 건설 분야에서 성공해 어엿한 기업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백종원은 인테리어 물품과 건설자재를 들여오는 건설자재 무역업을 시작으로 건설 분야에 발을 들였고, 동시에 운영 중인 회사 옆에 안정적인 수입을 위한 부업 개념으로 쌈밥집을 열었습니다.

다만 백종원에게 주사업은 건설업이었고 백종원은 90년대 당시 건설업계의 호황에 힘입어 사업 규모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실제로 백종원은 1994년 목조주택으로 눈을 돌려 시공회사까지 차렸는데요. 1996년 서른 살이던 백종원은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목조주택 자재 구입은 축적된 노하우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내는 일"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목조주택 사업 당시 모습(1994)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확장해가던 사업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무너졌습니다. 당시 목조주택의 자재는 해외에서 100% 들어오는 사업이었고 외환위기로 인해 미국 등에서 수입하는 목재 자재 가격이 폭등하자 유지가 힘들었습니다. 이미 집을 지어주기로 한 계약 건들에 대해 자잿값 폭등으로 수지를 맞출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본 손해액만 무려 17억 원. 게다가 평소 아끼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꿀 때 모멸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는데요. 금전은 물론 자존심의 상처도 심했던 백종원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홍콩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절망에 빠뜨린 IMF를
사업 아이템으로

e쌈밥집 성공으로 재기한 모습(VJ특공대)

하지만 죽음을 위해 찾은 홍콩에서 백종원은 새로운 희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오른 고층 빌딩에서 수많은 식당들을 보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올라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을 세우게 된 것이지요. 실제로 한국에 돌아온 백종원은 자신의 쌈밥집에서 채권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나한테 남은 건 이 식당 하나인데 나눠 가져도 얼마 안 된다.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 빚을 꼭 갚겠다"라고 설득했습니다.

한신포차 초기 모습

이후 하루 4시간만 자며 노력한 끝에 쌈밥집은 흑자로 돌아섰고 더불어 한신포차가 대박을 내면서 이자를 갚을 능력이 생겼습니다. 특히 한신포차는 백종원 자신을 역경으로 밀어 넣은 IMF 외환위기 상황을 고려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는데요.

1998년 최초의 실내 포장마차로 문을 연 한신포차 1호점은 1980년대 후반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여파로 사라진 포장마차를 재현해내며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외환위기로 가벼워진 서민들의 사정을 생각해 저렴한 가격으로 어필하고 서민적이고 친숙한 분위기를 꾸린 것이 성공에 주효한 것.

한신포차가 백종원의 사업임을 알고 놀라는 오마이걸 아린(SBS맛남의광장)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만큼 자신을 역경으로 밀어넣은 IMF상황을 절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사업 구상의 발판으로 삼아 한신포차 1호점을 탄생시킨 것이야말로 백종원 대표다운 발상의 전환인 듯한데요. 이러한 백 대표의 상징적 점포인 한신포차 1호점이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씁쓸함을 안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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