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웹툰 속에서 상상으로 만나는 현대판 왕실의 모습은 아름답고 품격이 넘칩니다. 왕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나라의 품격과 위상 역시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 기분인데요. 하지만 상상과 달리 현실에서 품위 있는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합니다.
심지어 왕위 계승 서열에서 한참 밀려난 공주들에게도 왕실 수당의 명목으로 지급되는 수당이 상당하다고 하는데, 이슈와 논란을 동시에 가져온 각국 공주들의 근황을 만나봅시다.
22억 거절한 네덜란드 공주
네덜란드 왕실은 영국 왕실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비싸고 호화로운' 왕실로 꼽혀왔습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지난해 편성한 2021년도 왕실 예산만 해도 무려 4750만 유로, 한화로 약 642억 1335만 원에 달하는데, 이는 국왕과 왕비의 공식 해외 순방 비용이나 왕실 공관 수리 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은 왕실의 사적 생활비용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올해 네덜란드의 알렉산더 국왕은 해당 예산 가운데 99만 8000유로, 한화로 약 13억 4915만 원을 연봉으로 받고 510만 유로, 한화로 약 68억 9448만 원을 생활비로 챙겼습니다. 때문에 네덜란드 국민들 사이에서 왕실은 '세금 먹는 하마'로 여겨지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데요. 특히 지난해 10월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할 무렵 국왕 부부가 그리스로 휴가를 떠났다가 거센 비판을 받아 하루 만에 귀국한 일이 발생하면서 왕실 이미지는 추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카타리나 아말리아 공주가 자신에게 주어진 왕실 수당을 거절하겠다고 밝히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말리아 공주는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막시마 왕비 사이의 장녀로 딸만 셋인 국왕이 지난 2013년 왕위에 오른 뒤 자연스럽게 차기 여왕으로 정해졌습니다. 네덜란드 왕실은 18세가 되면 규정에 따라 왕실 구성원들에게 각종 수당을 지급하는데, 12월 7일생인 아말리아 공주는 올해 생일 이후부터 생활비 30만 유로, 한화로 약 4억 1000만 원과 수당 130만 유로, 한화로 약 17억 6000만 원 등 연간 총 160만 유로, 한화로 약 21억 7000만 원을 수령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말리아 공주는 이달 11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에게 서한을 통해 "왕실 일원으로서 일정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생활비와 수당을 받지 않겠다"라고 전했습니다. 해당 서한에서 아말리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각종 수당을 받는 건 불편하다"면서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 대유행으로 다른 학생들이 훨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공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큰 비용이 필요할 때까지 수당을 받지 않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아말리아 공주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렀고, 대학 진학 전 1년간 봉사활동과 여행을 하며 진로를 탐구하는 gap year를 보낼 예정인데요. 아말리아 공주의 서한을 받은 뤼터 총리는 공주의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며 그의 결정을 이해하고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네덜란드 왕족 가운데 왕실 혜택을 포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인 만큼 아말리아 공주에 대한 국민들의 응원도 커지고 있지요.
세금 15억 받아서 시댁 빚 갚겠다는 일본 공주
절약과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에서 3억 원 상당의 티아라를 쓴 공주를 보고 환호하는 모습은 참 의외입니다. 실제로 후미히토 왕세제의 차녀인 가코 공주는 지난 2014년 20번째 생일을 맞아 성인식 기념으로 3000만 엔짜리 티아라를 머리에 올리고 공식 석상에 등장했는데요. 성인식을 치른 뒤 가코 공주는 연 915만 엔, 한화로 9천1백50만 원 상당의 용돈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루히토 일왕의 딸 아이코 공주는 연 6500만 엔, 한화로 약 6억 5천만 원의 용돈을 받는다고 하니 가코 공주의 용돈은 비교적 검소하다고 해야 할까요?
다만 일본 왕실은 현재 '남계남자'로만 계승되고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왕족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대신 결혼할 때 전 왕족으로서의 '품의 유지'를 위한 지참금을 최대 1억 5000만 엔, 한화로 약 15억 원까지 받을 수 있지요. 그리고 최근 해당 지참금이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바로 후미히토 왕세제의 맏딸인 마코 공주가 결혼을 선언한 것.
아키히토 전 일왕의 첫 손주이기도 한 마코 공주는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귀여운 외모 덕분에 주목받았고 고2부터 단독 공무까지 수행하면서 일본 왕족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지요. 국제 기독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늘 수수한 옷차림과 바른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왕실전범'을 개정해서 여성 일왕이나 여계 일왕을 인정하자는 논의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2017년 열애 사실이 공개되면서 마코 공주의 이미지는 반전을 맞았습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마코 공주의 열애 상대는 도쿄의 법률 사무소 직원인 고무로 케이입니다. 소탈한 이미지의 마코 공주가 평범한 남성과 결혼을 약속했다는 소식은 응원받았지만 이내 고무로의 복잡한 가정사가 공개되면서 여론이 반전되었습니다.
고무로의 어머니가 2002년 사별 후 교제한 남성에게 수년에 걸쳐 400만 엔을 빌렸으나 갚지 않고 있으며, 죽은 남편으로부터 나오는 유족 연금을 받기 위해 새 남자친구의 존재를 숨겨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이후 고무로의 어머니가 왕실에서 돈을 빌리려 했다는 둥, 신흥종교에 빠진 적이 있다, 원조교제를 했다는 등의 각종 의혹이 번졌습니다.
여론이 나빠지자 결국 마코 공주는 2018년 계획한 결혼을 2020년까지 미루겠다고 발표했고 그 사이 고무로는 미국 뉴욕의 포담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5월 고무로가 로스쿨을 졸업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두 사람의 결혼이 다시 임박했을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다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반대한 응답자가 무려 97.6%에 달했습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전 국민이 반대하는 수준이죠.
고무로가 유학을 떠난 중에도 끊임없이 보도된 고무로 어머니와 관련된 빚투 뉴스는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마코 공주가 결혼하면서 받게 될 15억 원의 지참금으로 고무로 어머니의 빚을 갚아주게 생겼다는 억울함인데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으로 시댁의 빚을 갚아주겠다는 공주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요. 수년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밀고 나가려는 마코 공주는 기존의 '여왕감'이라는 이미지에서 '고집쟁이'로 바뀌었습니다.
중동의 그레이스 켈리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지난 1993년 왕세자이던 시절 왕가의 한 만찬에서 애플 직원 자격으로 참석한 라니아 왕비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두 사람은 결혼 발표를 했고 1999년 아버지인 후세인 국왕이 서거하면서 압둘라 2세는 37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며 라니아도 왕비가 되었지요.
애플의 마케팅 부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왕비가 된 라니아 왕비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데다 자선사업과 사회적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서 중동의 '그레이스 켈리'로 불립니다. 실제로 라니아 왕비는 지난 2015년 IS에 의해 화형 된 조종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유족을 찾아가기도 했는데요.
라니아 왕비를 꼭 빼닮은 두 딸 이만 공주와 살마 공주 역시 눈길을 끕니다. 1996년생인 이만 공주는 명문대 조지타운 대학 출신의 수재로 운동과 학업 모두에서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특히 어머니 못지않은 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2000년생인 살마 공주는 요르단 왕실 최초로 여성 파일럿이 되었습니다. 2018년 영국 육군사관학교인 샌드허스트를 졸업한 살마는 요르단 최초로 군사 훈련을 받은 여성 파일럿이 되었는데, 2000년 진행된 살마 공주의 임관식 당시 아버지인 압둘라 2세가 조종사의 상징인 '파일럿 윙'을 제복에 직접 달아주는 모습이 공개되어 큰 화제가 되었지요. 여성들이 목소리 내기 힘들다는 중동 지역에서 두 공주의 활약은 좋은 본보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