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대표 삭발인이자 탈모인인 구준엽이 빽빽한 머리숱을 자랑하는 사진으로 화제입니다. 앞서 탈모가 심하게 진행되기 이전부터 머리를 밀고 삭발 스타일을 유지해왔다는 구준엽은 이후 탈모가 더 진행되면서 민머리에 모근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두상이 예쁘고 얼굴이 작은 편이라 민머리가 잘 어울렸지만 거뭇한 머리숱의 흔적이 없어서 그야말로 대머리의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구준엽은 빼곡한 모근 덕분에 흡사 '박새로이'를 닮은 듯한 헤어스타일로 변신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머리 다시 기르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만족한다는 구준엽의 변신 비결은 바로 두피문신디자인입니다.
구준엽에게 비탈모인의 삶을 선물한 두피문신디자인은 SMP라는 이름으로 이미 해외에서는 유명한 시술입니다. 마이크로 니들로 두피 표면에 실제 모근과 유사한 형태의 미세한 점을 새겨 전체 탈모, 부분 빈모, 수술흉터 등으로 인한 모발의 공백 부위를 커버하는 기법인데요.
3년 여전 이러한 기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서양인의 두상과 모발 등의 특징에 한정돼 있던 SMP 디자인 기법을 동양인에 맞게 개발한 인물이 있습니다. 구준엽의 드라마틱한 변신을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한 국내 두피문신 디자인의 선구자는 뷰티살롱 '그레이시티'의 대표 알렉스 박입니다.
31살 나이에 성공한 젊은 CEO로 불리는 알렉스 박 대표는 자칭 흙수저 출신입니다. 관광경영학과를 다니던 중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중퇴를 했고,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박 대표는 무작정 일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때 청담동의 한 미용실 채용공고에 '동방신기가 온다', '이병헌이 다니는 미용실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는데, 덜컥 합격했고 생각보다 쉽게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해당 미용실에서 근무한 1년간 박 대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미용기술을 배워서 먹고살아야겠다는 의지과 달리 미용실 막내로서 박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와 샴푸뿐이었지요.
'이대로는 안되겠다'라는 회의감이 든 박 대표는 그때까지 번 돈으로 속성으로 헤어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말 그대로 속성으로 디자이너가 된 박 대표는 미용실에 취직을 했고 전과 달리 직접 손님의 헤어스타일링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배운 탓에 부족한 실력은 금방 들통났습니다.
당시에 대해 박 대표는 "손님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적도 있다"면서 "클레임 걸리고 온갖 창피 다 당하고 원장님에게 핀잔까지 듣고 집에 돌아갔는데 집은 반지하였다"라고 우울했던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다행히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 부딪치며 기술을 익힌 박 대표는 결국 헤어디자이너로서 실력을 쌓아 직접 창업까지 해냈습니다.
하지만 독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기술을 익히고 연구해도 '탈모고객'을 대할 때는 늘 난감했습니다. 어떤 스타일링을 해도 답이 안 나왔고 '탈모 고객에게 멋진 헤어스타일링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해외에서 탈모커버로 일반화된 '두피문신'을 접하게 되었지요.
서양인 기준으로 매뉴얼화된 기술을 한국인에 맞게 연구하고 두상에 따른 세밀화된 디자인 작업 과정을 분류하는 연구까지 마친 박 대표는 자신감 있게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기존에 자신이 운영해 오던 남성 전용 헤어샵에 탈모고객을 위한 두피 문신 시술을 추가한 것. 하지만 시술 사례가 극히 드문 상황에서 해외 고객들의 사진만 본 고객들은 상담만 받고 고민하다가 돌아서기 일쑤였습니다.
당시에 대해 박 대표는 "그때 나는 정말 간절함이 있었다. 이 기술로 내가 흙수저를 탈출하고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고객들에게 기술의 좋은 점을 설명하려면 내가 먼저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표는 실제로 삭발을 감행하고 자신의 두피에 두피문신 디자인 작업을 했습니다.
박 대표가 직접 모델이 되자 고객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을 지금의 내 모습처럼 만들어 주겠다"라는 박 대표의 확신 찬 말에 믿음이 생긴 탈모고객들이 상담 직후 시술을 결정했습니다. 시술 사례가 쌓이면서 비포와 애프터를 비교한 사진이 늘어났고 더불어 시술을 경험한 고객들 사이 입소문이 퍼지면서 어느새 박 대표는 헤어디자이너보다는 삭발 디자이너로 더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요.
고객이 삭발을 결심하면 삭발 디자이너는 메이크업 도구를 이용해서 가상 디자인을 합니다. 사람마다 두상 모양, 얼굴형, 이마라인에 따라 맞춤 디자인을 하는데, 고객의 선호도에 따라 보다 엣지있고 트렌디한 패션디자인을 할지 자연스러운 내추럴 디자인을 할지도 함께 결정합니다.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디자인이 협의되면 1~5차에 거쳐 시술을 진행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시술이 완료되면 80% 이상 영구적으로 디자인이 유지되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외선이나 피부 노화 등의 이유로 색이 흐려지면 리터치 작업을 통해 다시 선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충분히 대화하고 상의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니만큼 고객들의 만족도는 높았습니다. 특히 오랜 시간 탈모로 고생한 고객들에게는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닌 정신적 위로까지 해주는 시술이었지요.
박 대표에게 시술받은 한 고객은 다발성 원형탈모로 오랜 시간 고생하면서 300만 원 넘는 치료비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고 탈모치료제를 장기간 복용하다가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절망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해당 고객은 차선색으로 통가발을 사용했는데, 더위와 피부 간지러움 등으로 고생하던 중에 박 대표를 만나 고심 끝에 두피 문신을 결정했습니다. 시술 후 해당 고객은 평소 가발 착용을 알고 있던 지인들에게 "머리숱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제껏 왜 가발을 썼느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요.
한편 지난해 유튜브 채널 '30대 자영업자 이야기'와의 인터뷰에서 "해외여행도 한 번 가본 적 없다"면서 "늘 누군가 쫓아오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느낌인데 언젠가는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길 바란다"라던 박 대표는 여전히 열일 행보 중입니다. 헤어 문신 디자인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인 현재 박 대표는 해당 기술을 교육하는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직영점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서 현재 본점을 포함해 10개 매장을 관리 중이지요.
같은 인터뷰에서 박 대표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추진력 하나다"라며 "사업 초반 상담만 받고 돌아서는 손님을 보면서 '다음번에 오는 고객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내 머리를 밀었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업 확장으로 인해 쫓기는 달리기를 멈추지는 못했으나 남다른 추진력으로 대한민국 대표 빡빡이 연예인 구준엽의 시술까지 성공한 알레스 박 대표. 마지막 버킷리스트 고객으로 홍석천을 꼽았는데,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