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범위는 더 넓어지고 그 경계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회화나 조각 등 좁은 범위의 미술작품만 정통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콜라보, 대중성, 쉬운 예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의 예술 활동은 미술 분야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요. 그중 가수 출신의 배우 이혜영은 연예인들의 미술활동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던 때부터 일찍이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완성한 스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연예계를 떠나 오랜 시간 화가로 활동해 온 이혜영은 최근 연예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만 연예인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아닌 특별한 역할을 맡아 화제인데요. 90년대 잘나가던 걸그룹 출신인 이혜영이 후배 걸그룹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의 특별한 근황을 만나볼까요?
1남 2녀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이혜영은 부모님과 언니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특히 터울이 큰 언니가 보는 패션잡지를 보면서 일찍부터 패션과 뷰티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언니가 사 오는 일본 잡지를 보고 종이 인형 옷들을 직접 만들어 입히는 귀여운 소녀였지요.
또 남다른 패션 감각을 돋보이게 할 미모 역시 갖추어진 덕분에 학창 시절부터 꽤 유명세를 탔는데, 인천 신명여고 재학 중에는 학교 앞에 이혜영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남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을 정도. 당시에 대해 이혜영은 "인천에서 제일 유명했던 미모의 소유자는 황신혜 선배였다"면서 "제2의 황신혜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분들 중에는 실망해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태도와 달리 이혜영은 눈에 띄는 미모 덕분에 길거리 캐스팅되어 고등학생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고 광고모델로 일하면서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1992년 혼성 3인조 그룹 1730의 홍일점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해체되었지요.
열심히 준비한 가수 활동이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되자 이혜영은 연예계 생활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껴 그만두려고 했는데요. 이때 DSP수장이자 핑클, 젝키 등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 이호연 사장이 직접 연락해 2인조 걸그룹 듀오를 제안하면서 윤현숙과 함께 '코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코코시절 윤현숙이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여성적인 매력으로 남성팬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이혜영은 파격적인 숏커트 스타일과 남다른 패션감각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드라마 첫사랑
그리고 1995년을 마지막으로 코코 활동을 정리한 이혜영은 본격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바람의 아들'로 시작해서 '파파', '신고합니다' 등에서 조연을 맡으며 연기 경험을 쌓았고 1996년 출연한 드라마 '첫사랑'을 통해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신인여우상을 수상했지요.
가수 출신이며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한 연기 활동은 초반 대중들에게 큰 기대를 얻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연기력 덕분에 점차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는 패셔니스타의 이미지를 탈피해 더벅머리에 검정칠 분장까지 하는 열정을 보였지요.
또 2000년에는 솔로 앨범 '라돌체비타'를 내놓으며 가수로서 재기에도 성공했는데, 당시 앨범 제작은 오랜 연인이던 이상민이, 뮤직비디오 촬영에는 절친인 오연수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오연수는 자신의 시어머니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잭팟을 터뜨리며 큰 화제가 되었던 때에 이혜영에게 연락해 현지 업체에서 장소 로케이션을 해주기로 했으니 어서 와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라고 했고, 이에 이혜영이 단 며칠 만에 가사를 붙여 녹음까지 마친 뒤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뮤직비디오 촬영을 한 것입니다.
이어 미국에서 귀국한지 단 2~3일 만에 방송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고 하니 노래가 만들어지고부터 무대에서 완성되기까지 정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셈. 속사포로 진행되었음에도 무대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무엇보다 이혜영의 남다른 감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라돌체비타의 보안관 콘셉트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무대의상입니다.
그 시기 이혜영이 직접 디렉팅 해서 성공한 또 다른 무대의상이 있습니다. 바로 걸그룹 샤크라의 파격적인 인도풍 의상인데요. 이상민이 제작한 걸그룹 샤크라의 무대의상을 스타일링하게 된 이혜영은 한복 천과 데님을 섞고 에스닉한 느낌을 추가해 독특한 인도풍 의상을 완성했고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만 샤크라 멤버들은 보다 평범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다며 울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이혜영이 울린 여자 가수는 더 있습니다. 디바는 여자 DJ DOC 콘셉트로 펑키한 스타일을 디렉팅 했는데 멤버들에게는 너무 파격적이었던지 눈물을 흘렸고, 엄정화의 '다가라' 패션 역시 뱅헤어에 어울리는 귀여운 미니스커트를 스타일링 했지만 데뷔 이후 처음으로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는 엄정화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상민이 제작한 가수들의 무대의상을 스타일링하면서 두 사람은 업무적 동반자이자 오랜 연인으로 7년의 연애를 이어온 끝에 2004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이상민이 사업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혼 1년 2개월 만인 2005년 두 사람은 결별했는데요. 결별 당시 이혜영은 이상민에게 '결혼 전 모바일 누드 화보를 찍으라고 강요한 후 계약금 5억 원과 이익금 3억 원을 가로챘고 이혜영의 명의로 10억 원의 대출을 받아 갚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22억 원대의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이상민의 빚 때문에 위장이혼을 했다는 소문을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이 제기되었고, 소송 내용이 사실 유무와는 상관없이 여배우로서 7년 연애와 1년여의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이라는 사생활이 보도된 만큼 이혜영은 큰 상처를 안은 채 연예계 활동을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이혜영은 예능인이자 연기자로 여전히 활약하면서 복귀에 성공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상처를 안은 채 전과 달리 감정을 숨기고 세상과 담을 쌓은 듯 지냈습니다. 2009년 드라마 '내조의 여왕'으로 '여자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여전했습니다.
이에 밝기만 하던 늦둥이 딸이 혼자되어 외로워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부모님이 재혼을 권유했고 이혜영은 못 이기는 척 선 같은 소개팅을 연이어 보게 되었습니다. 7명의 남자를 만난 끝에 지금의 남편과 인연이 닿은 이혜영은 2년간 연애를 이어갔고 친정아버지가 위암 말기로 4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을 알고 급히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결혼 후 이혜영은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둔 딸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하와이에서 지냈지요.
다만 결혼 초기 딸은 사춘기였고, 이혜영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여러 가지 절망이 동시에 찾아왔지요. 이때 이혜영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그림 그리기'인데요. 이혜영은 이혼 후 세상과 담을 쌓은 듯 참고만 살면서 쌓아두었던 감정과 하고 싶은 말들을 그림으로 그려내면서 5년 동안 수백 점의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세 차례나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친 화가 이혜영은 뉴욕 전시회에서 2천만 원에 작품이 팔릴 정도로 인정받는 아티스트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남편 덕분에 처음으로 미술관에 갔다는 이혜영은 화가가 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데요.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건 아니지만 학창 시절 늘 미술시간을 즐거워했고 연예계 활동에서도 무대와 방송이라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감각을 키워왔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이혜영은 2002년 경 론칭한 속옷 브랜드 미싱도로시의 운영 당시 디자인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낼 정도로 아티스트로서 면모를 자랑했고 2010년 자신의 지분가치 10억 원을 모두 기부하면서 해당 브랜드의 CEO 자리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중 하나가 회화 작품이었던 것뿐이라는 설명.
최근 가수 출신의 배우이자 화가로도 인정받은 이혜영이 오랜만에 가요계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무대는 아니지만 후배 걸그룹들의 무대를 빛내고 있는데요. SM의 수장인 이수만과 사적인 자리에서 밥을 먹던 중 아이린과 슬기의 유닛 활동 비주얼 디렉팅을 부탁받아 일을 시작한 것. 처음 제안을 받고 자신이 없었다는 이혜영은 "할 거면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앨범 재킷, 뮤직비디오 2편과 향후 방향까지 디렉팅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이혜영은 SM의 새 걸그룹 에스파의 비주얼 디렉팅도 맡았습니다. 손을 뗀지 오래되어 자신이 없다던 이혜영의 말과 달리 에스파의 스타일링은 팬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중인데요. 에스파의 스타일을 만든 주인공이 이혜영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현대판 샤크라"라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이혜영의 스타일링 감각을 칭찬했습니다.
정통성, 전공자, 학벌 등 서류가 주는 의미가 모호해진 요즘,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 이혜영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 배우로서 활동까지 재기해 준다면 팬들의 반가움을 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