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에 대한 절실함은 옛말?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특정 스포츠 종목에서 1인자로 인정받는 동시에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는 점에서 무척 명예로운 일입니다. 실제로 미디어를 통해서 만나는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생활 중 늘 국민들에게 응원받고 은퇴 후에도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자랑스러운 수식어를 달고 박수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최근 선수들 사이에서 국가대표와 태극마크는 더 이상 절실하고 간절한 대상이 아닌 듯합니다. 세계선수권대회나 아시아선수권 같은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팀이 엔트리를 다 채우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서는가 하면 출전한 선수들이 몸을 사리며 벤치만 지키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는데요.
2017 그랑프리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출전 당시 엔트리를 채우지 못한 모습
실제로 지난 2017년 그랑프리 아시아 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김연경 선수는 여자배구 대표팀 엔트리 14명을 채우지 못하고 13명이 출전한 대회에 나서면서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까지 20경기가 넘는데, 6~7명의 메인선수만 계속 경기를 뛴다. 결국 고생하는 선수만 고생한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20년만에 금메달을 획득한 후 김치찌개 회식을 해서 논란된 배구협회
또 김연경은 "국가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엔트리와 같은 기본적인 지원조차 이뤄지지 않으면 솔직히 말해서 고생만 한다는 생각만 든다"라고 덧붙였는데요. 프로야구 FA가 100억 원을 훌쩍 넘긴 요즘 억대 연봉의 선수들에게 국가대표의 사명감만으로 힘든 대회 일정 참가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대표팀에 차출되어 받는 하루 일당은 6만 원입니다. 대한체육회에서 지급하는 훈련수당인데, 실업팀이나 프로팀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경우 국가대표 선수들의 수익은 이 수당이 전부인 셈입니다. 한 달 평균 20일 훈련하면 한 달에 120만 원이 나오는데, 세금 3.3% 떼고 나면 실수령액은 116만 원 정도. 이마저도 1년에 180~240일로 제한되기 때문에 1년 중 2~3개월은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훈련수당 6만 원은 지난 2015년 5만 원에서 만원 인상된 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동결된 금액입니다. 이는 하루 근무시간 8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시급 7500원으로 최저임금에서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요.
일부 인기 종목의 경우 종목 협회에서 추가로 수당을 지급해서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최근 한 예능에서는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모여 직접 경험담을 풀어놓았습니다. E채널 '노는언니'에서 국가대표 출신 피겨선수 곽민정은 "내가 대표일 때는 되게 오래전이다. 그때는 수당이 진짜 적었다"라며 말을 꺼냈고 이에 배구선수 한유미는 "5천 원이었다. 그러다 2만 원으로 올랐다"라고 동의했습니다.
그들보다 후배인 수영선수 정유인은 "저는 5만 원이었다"라며 "수당이 종목별로 다르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는데요. 이에 한유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이 많이 받는다고 해서 다른 종목들이 항의해서 올린 거다. 축구는 하루에 10만 원 이상 받았다더라"면서 "대한체육회에서 나오는 수당은 동일하다. 그런데 나머지 금액은 각 종목 협회에서 추가로 수당을 지급한다. 축구협회는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줬던 거다"라고 밝혔습니다.
돈 많은 협회의 지원을 받거나 따로 소속된 실업팀이 있는 종목이 아니라면 훈련수당은 선수들에게 월급이자 생계수단입니다. 때문에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경우에는 수당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수촌 입촌 훈련이 중단되면서 훈련수당 지급 역시 중단된 상황인데요. 이에 전업 운동선수들은 생계가 어려워져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대리운전 등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지난 6월 대한체육회는 비대면 훈련도 국가대표 훈련으로 인정하는 '회원종목단체 관련 보조금 지원예산 집행지침'을 개정했습니다. 덕분에 선수와 지도자 모두 월 최대 20일간 비대면 훈련에 대한 훈련수당을 지급받게 되었지요.
한편 문체부 측은 비인기종목에 대한 처우개선을 훈련수당 인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보인 바 있는데요. 지난해 투데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국가대표 훈련수당은 실업팀에 소속돼 있거나 혹은 재학 중인 학생이거나, 전문 체육분야에서 본래 직업이 있는 선수들이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에 출전하기 위해 소집됐을 때 훈련기간에 지급하는 수당"이라면서 "훈련수당은 훈련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수당의 개념이지 급여가 아니기 때문에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대한 처우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문체부가 말하는 '다른 차원의 접근'은 '실업팀이나 일자리 마련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인프라 조성'이라는 것인데, 이 같은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