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그만 두고 대치동에서 초등학생들 가르쳤죠

10대 청소년이 대형기획사 연습생이 될 확률은 1%, 그중 데뷔에 성공할 확률은 0.1%, 그렇다면 그들이 스타가 될 확률은 도대체? 바늘구멍보다도 작은 확률을 뚫고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등극하더라도 그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5년 남짓. 이후 새로운 사회생활에 뛰어드는 아이돌 출신들은 새로운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지요.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는 바람에 학업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사회생활에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은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18살의 나이에 걸그룹의 멤버로 데뷔해서 빌보드 차트까지 입성한 주인공 역시 해체와 동시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했습니다.

2010년 2월 걸그룹 원더걸스의 새 멤버로 데뷔해 무려 데뷔 11년 차가 되었다는 주인공은 바로 우혜림입니다. 2007년부터 JYP의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혜림은 중국판 원더걸스를 계획하며 다른 중국인 멤버들과 함께 연습 중이었는데요. 갑작스레 원더걸스의 멤버 선미가 그룹을 나가면서 그를 대체할 멤버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데뷔 당시 혜림은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혜림은 2살 무렵 홍콩으로 이민을 떠났는데요. 홍콩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늘 태극기가 걸린 체육관에서 생활했지만 14년 동안의 유년기를 지낸 홍콩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지요. 더불어 영어와 중국어, 광둥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한 덕분에 대한민국 국적을 의심받는 뜻밖의 논란이 생긴 것입니다.

이미 최정상급 걸그룹이었던 원더걸스에 교체 멤버로 들어간 혜림은 활동 초반 전 멤버인 선미와 비교를 당하면서 심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더걸스의 활동 중 가장 힘들었던 미국 진출 시기에 합류한 혜림은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해냈고 이후 국내 활동을 통해 '2DT'가 흥행하면서 최정상 아이돌의 멤버로 자리 잡았지요.

이후 멤버 소희가 연기 활동을 위해, 리더인 선예가 결혼과 출산을 위해 탈퇴한 이후에도 혜림은 원더걸스를 지켰고 2015년 원년 멤버였던 선미가 합세해 세 번째 정규앨범까지 발매했습니다. 4인조로 재구성된 원더걸스는 기존과 다른 밴드 컨셉을 선보였고 그중 혜림은 기타를 맡아 활동했는데요. 데뷔 당시 혜림은 교체 멤버였지만 결국 원더걸스의 마지막 활동을 함께 한 최종 멤버가 된 셈이지요.

그리고 2017년 팀이 해체되면서 혜림은 미뤘던 학업을 위해 학교로 갔습니다. 나이로는 11학번이 되어야 하지만 아이돌 활동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탓에 17학번 새내기가 되었지요. 4개 국어 능통자로 알려진 혜림은 자신의 적성을 살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회의통역번역커뮤니케이션학과 17학번이 되었고, 입학과 동시에 거주지까지 학교 인근인 동대문구 이문동으로 옮긴 혜림은 학교생활과 학업을 1순위에 두었습니다.

2017년 1, 2학기 모두 높은 성적으로 장학금까지 받은 혜림은 교내 영자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외교부 주최의 대학생 서포터스에 응모하여 활동할 정도로 전공 공부에 열심히입니다. 오랜 해외 생활로 인해 자연스럽게 4개 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통번역은 단순 의사소통을 넘어서는 학문과 기술이 필요한데요. 혜림 역시 스스로 "발음은 좋지만 내공이 없는 것 같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라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면서 공부한다는 혜림은 장학금을 받고 학과 조교까지 하면서 학교생활에 열의를 다했습니다. 이에 대해 혜림은 "원더걸스 타이틀로 불러주지 않을 때 일을 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통번역가라는 직업에 진심과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최근 혜림은 한 인터뷰를 통해 원더걸스 해체 후 통번역가가 되기 위한 길에 들어서면서 도전했던 다양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혜림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과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영어과외를 했는데, 대학교의 익명게시판을 통해 직접 과외학생 모집 광고를 게재하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익명으로 올린 게시물을 통해 만난 학생들은 첫눈에 혜림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사진을 찍어달라'라는 등의 요구를 하지 않고 과외 선생님으로 대했습니다.

오히려 혜림의 걱정은 다른 부분에 있었는데, 앞서 아리랑TV나 EBS 등에서 영어교육 관련 방송을 한 경험까지 있긴 하지만 과외수업 자체는 처음이다 보니 강사로서 자신의 커리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길이 없어서 과외수업 비용을 어느 정도 책정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혜림이 당시 받은 과외비는 시간당 단돈 만 원.

이후 주변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조언한 덕분에 혜림은 과외로 돈을 버는 다른 대학생들을 생각해서 '시간당 5만 원'으로 가격을 올렸습니다. 18살에 가수로 데뷔한 이후 '원더걸스'로만 지낸 혜림에게 완전하게 새로운 사회생활이자 경제활동은 생소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당시에 혜림은 대치동에서 초등부를 대상으로 영어강사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초등 4학년 남학생반을 맡아서 학생들은 혜림의 '원더걸스' 이력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저 '착하고 예쁜 선생님'으로 보였겠지요. 이에 대해 혜림은 "엄격함이 아예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라며 "옆반은 조용한데 우리반은 너무 떠들어서 컴플레인이 오기도 했다.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애들 관리하고 케어하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이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진행자가 "원더걸스 활동과 애들 떠드는 것 중 무엇이 더 힘드냐"라고 질문하자 "애들 떠들 때가 더 힘들었다"라고 답해 웃음을 유발했는데요. 이어 "물을 마시고 오는 사이에 애들이 문을 잠가버리면 당황했다"면서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지요.

가수 활동의 이력을 완전히 지운 채 영어강사까지 하면서 노력한 혜림은 2018년 첫 번역작을 내놓았고 학과 조교 활동을 하면서 통번역가로서의 길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동시에 영화 '첫잔처럼'의 주연을 맡아서 본격 연기활동도 시작했으며 각종 예능을 통해 방송활동도 이어가고 있는데요.

지난 7월에는 7년 열애 끝에 태권도 선수 신민철과 결혼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태권도 사범인 혜림 아버지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고 지난 3월 한 관찰예능에 등장해서 7년간의 비밀연애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7월 5일 원더걸스 멤버들의 축하를 받으며 부부가 되었지요.

한편 신사임당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혜림은 "해체했을 때 처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면서 "(시간이 지난 후 ) 어느 순간 '와, 진짜 끝났어?'싶어서 예전 노래를 들으며 혼자 많이 울었다"라도 털어놓았습니다. 해체에 대한 공허함이 실감 났을 그때, 혜림이 '통번역가'라는 새로운 직업의 기반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면 더욱 힘들지 않았을까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면서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온전히 내려놓고 도전한 용기와 노력이 있었기에 지난 시간에 대한 허무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겠지요. 통번역가이자 연기자, 작가, 방송인으로서의 혜림의 앞으로 행보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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