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온다'라는 말은 성실하게 노력하고 준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특히 대중들의 인기와 사랑으로 평가받는 연예계에는 연기력이 뛰어난데도 단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명배우도 있고 가창력이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가수도 수두룩하지요.
그렇다면 지금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스타들은 어떻게 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을까요? 때로는 실력보다 중요한 '결정적 한 방', 스타들을 빛나게 한 그 순간을 만나봅시다.
테크노댄스 전지현
17살이던 1997년 패션잡지 표지모델로 발탁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전지현은 이듬해 드라마 '내마음을 뺏어봐'에 캐스팅되었고 '인기가요'의 MC를 맡는 등 주목받는 신인이었습니다. 다만 연기도 진행도 미숙했던 터라 혹평이 이어졌고 스타가 될만한 매력을 발산하지도 못했지요.
몇 년 간 '기대되는 신인'으로 거론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많은 신인 연기자들처럼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그때, 전지현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장면은 바로 15초짜리 광고 하나. 1999년 드라마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시작할 무렵 전지현은 삼성 마이젯 프린터 광고에 출연했는데요.
해당 광고 속에서 전지현은 테크노음악에 맞춰 현란한 춤을 선보이면서 섹시한 매력을 발산했고, 이전까지 풋풋하고 청순한 이미지 대신 당찬 신세대의 이미지로 변신했습니다. 이 광고를 위해 전지현은 열흘 동안 서울 압구정동의 한 댄스 클럽에서 프로 댄서와 함께 4~5시간씩 춤 연습을 했고 완벽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덕분에 광고에 등장한 제품은 시장점유율이 39.3%에서 44%로 매출 급성장에 성공하기도 했는데요. 프린터 판매율보다 급격한 성장률을 보인 것은 전지현의 인지도이지요.
레깅스 시구 클라라
코리아나의 멤버 이승규의 딸이기도 한 클라라는 영국 국적권자로, 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2002년 미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첫 데뷔를 한 이후 2004년 우리나라로 건너와 광고모델로 활동을 시작했지요. 이후 배우의 꿈을 가지고 각종 드라마와 시트콤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밝은 이미지가 눈길을 끌지만 연예계 수많은 미녀들 사이에서 특출난 스타성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던 클라라에게 인생역전이 된 장면은 바로 시구입니다. 2013년 5월 LG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어린이날 시리즈 첫 경기의 시구자로 선발된 클라라는 상의는 두산, 하의는 LG 유니폼 차림으로 등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대해 준 팀의 복장을 입는 것이 예의임에도 남다른 선택으로 구설에 오를 법도 한 상황에서 클라라는 시구 이후, 비난이 아닌 긍정적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크롭 셔츠에 레깅스 차림으로 등장해서 시구하는 모습을 본 팬들에게 어느 팀의 유니폼인지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대신 클라라의 건강미 넘치는 몸매와 당찬 분위기가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갔습니다.
시구 직후 해당 장면은 '레전드 영상'으로 온라인을 휩쓸었고, 클라라는 데뷔 9년 만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해 클라라는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핫스타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의 신인상을 다수 수상한데 이어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연이어 러브콜을 받으면서 2015년에는 조여정과 투톱 주연으로 영화 '워킹걸'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직캠 역주행 하니
고등학교 1학년부터 JYP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데뷔를 준비했지만 무산된 하니는 2012년 21살이 되어서야 걸그룹 EXID로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2년 넘게 디지털 싱글을 포함해 4개의 음반을 발매했음에도 주목받지 못했고 그러는 동안 멤버도 교체되면서 힘든 상황이 이어졌지요.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면서 숙소 역시 작은 평수로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방 하나에 2층 침대를 3개나 욱여넣어 지낼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대해 하니는 "주로 라면만 먹고살았는데, 어느 날 한 멤버가 고향에서 간장게장을 가져왔다. 근데 함께 모여 먹을 공간이 없어서 방에 일렬로 앉아 다리에 그릇을 올려두고 먹었다"라며 웃픈 일화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반전의 순간은 아주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2014년 8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위아래'가 발매된 지 수개월이 지나서 역주행 열풍을 일으키게 된 것인데요. 2014년 10월 파주 한마음 위문공연에서 EXID 하니의 '위아래' 무대를 한 팬이 직접 카메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것이 화제를 몰고 왔고, 덕분에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영상은 음원차트 '역주행'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면서 실제로 EXID가 음원 발매 6개월 만인 2015년 1월 가요 프로그램 첫 1위를 차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EXID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15년 한 해에만 '위아래', '아예', 핫핑크'까지 세 곡이 모두 공중파 가요프로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국내 최정상급 아이돌에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하니의 개인 활동 역시 전성기를 맞이해서 '국민 여동생'의 수식어까지 얻었지요.
어머나 소희
노래 실력과 가수의 인기는 비례할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특히 솔로가 아닌 그룹의 경우에는 메인보컬을 맡은 멤버가 주도적으로 노래를 이끌어나가고 다른 멤버들은 춤, 랩 혹은 비주얼까지 각자의 파트에 집중하지요. 원더걸스의 소희 역시 노래 실력보다는 댄스와 센터를 맡은 멤버인데요.
첫 싱글 '아이러니' 활동 당시에는 리더이자 메인보컬인 선예가 센터까지 맡으면서 팀을 이끌어갔지만 원더걸스의 진짜 전성기를 이끌어낸 건 소희입니다. 정규 1집을 발매한 2007년 9월 타이틀곡 Tell Me에서 "어머나" 한 마디로 전국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당시만 하더라도 걸그룹보다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 대세였는데, 소희가 불러온 '어머나' 열풍은 '삼촌팬'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젖살이 아직 빠지지 않아서 '만두'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16살 소희는 그야말로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되었고 덕분에 원더걸스뿐만 아니라 이후 등장한 카라, 소녀시대, 애프터스쿨도 모두 성공할 수 있는 발판 역시 만들어졌습니다.
진짜사나이 혜리
걸스데이는 경쟁이 치열한 가요계에서 대기만성형으로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입니다. 걸그룹이 쏟아지던 2010년 데뷔했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혜리 역시 싱글 2집부터 새로 영입되어 혹독한 신인시절을 보냈지요. 이런 상황에서 데뷔 초 팀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열일한 멤버는 민아였고 덕분에 차츰 인지도를 높여가던 걸스데이는 2013년 '기대해' 이후 'something'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민아를 제외하고는 멤버들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에서 혜리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 출연해 팀내 인지도 순위를 완벽히 바꿔놓았습니다. 2014년 8월부터 방영된 해당 방송에서 혜리는 화생방 훈련에서 방독면 정화통을 제대로 결합하지 못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열정을 보였고 식사시간에는 쌈밥을 싸먹으며 소탈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이끌어냈습니다.
무엇보다 퇴소식 당시 분대장 조교와의 작별 인사 장면에서 울음을 그치라는 냉정한 말에 살인적인 애교를 선사하면서 분대장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는데요. 방송이 끝나기 단 5분 전에 나온 이 장면은 "이이잉"이라는 세 글자로 전국을 휩쓸었지요. 이후 혜리의 인기는 그룹 내 인지도 순위를 넘어서 대한민국 걸그룹 중 톱을 자랑했고 지금까지도 배우이자 예능인으로서 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