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더 이상 흠이 아닌 세상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혼'이 밥 먹듯 쉬운 일도 아니지요. 특히 가족과 친척은 물론 지인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웨딩 마치를 올렸다면 이를 번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던 여배우가 결혼식과 신혼여행 일정은 물론 신혼집까지 모두 공개된 상황에서 결혼 3일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모, 돈, 남자는 죽을 때까지 항상 내 주위에 깔려있는 줄
신혼여행 직후 이혼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배우 김청입니다. 80년대 톱 여배우의 자리에 올랐던 김청은 앞서 1981년 갓 스무 살이 되자마자 미인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는데요. 당시 김청은 친구가 떡볶이를 사줄 테니 함께 미스 MBC 대회에 출전해달라는 부탁에 신청서를 넣었고, 의상을 빌릴 여력도 되지 않아 이화여대 앞에 있는 웨딩숍에서 웨딩드레스를 빌려 출전했다가 2등을 차지했습니다.
해당 대회 수상자의 특전으로 이듬해 MBC 14기 공채 탤런트가 된 김청은 본격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각종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 경험을 쌓는 한편 '쇼 2000'의 MC를 맡으면서 진행자로서도 활약했습니다. 왕조위를 닮은 외모와 똑 부러지는 진행 솜씨 덕분에 김청은 단숨에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는데요.
특히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출연한 이후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당시 최고 인기 예능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진행까지 맡으면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덕분에 의약품, 건강식품, 보험, 보일러, 화장품 등 각종 CF까지 휩쓸게 된 김청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지요.
당시에 대해 김청은 "미모, 돈, 남자는 죽을 때까지 항상 내 주위에 깔려있는 줄 알았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실제로 전성기 시절 김청은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연예인 2위에 오를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는데요. 다만 남편 없이 홀로 김청을 키워온 어머니가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면서 생긴 빚을 갚느라 여유 없이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18살에 과부 된 어머니
갓 스물이 되자마자부터 빚을 갚느라 고생하면서도 김청이 늘 어머니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김청의 어머니는 17살 나이에 12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혼전임신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양가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김청의 아버지는 딸이 백일 되었을 무렵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시댁에서 김청을 데려가려고 하자 김청의 어머니는 시댁 식구들을 피해 강원도와 부산 등으로 도망 다니며 지내야 했지요.
18살 나이에 남편을 잃고 백일 딸을 둔 미혼모가 된 김청의 어머니는 죽은 남편과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홀로 딸을 키우면서 평생 남편의 제사를 지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김청이 19살 되던 해에 사업을 하다가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배신 당하면서 무려 30억 원의 빚을 지게 된 것입니다.
홧김에 결혼했다가 3일 만에 파경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의 노고를 알기에 김청은 어머니에게 유난히 애틋했고 빚을 청산하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너무 많은 팬들이 몰리는 바람에 백화점 셔터를 내리고 사인회를 진행할 정도의 인기를 누린 김청은 당시 재력을 앞세워 만나자고 다가오는 남자들도 많았지만 모두 거절한 채 일에만 집중했는데요.
단 한 명 첫사랑이자 유일하게 사랑했던 한 남자를 만나면서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김청이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사실을 알고 반대하자 자존심이 상했던 김청은 남자친구에게 화풀이를 했고 결국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일에만 몰두하던 김청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된 남자친구와의 이별은 큰 아픔이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해 빚을 모두 청산하기도 한 그때 김청은 오히려 허무함과 쓸쓸함에 빠졌는데요. 공허한 마음을 안고 골프를 치며 마음을 달래던 김청에게 다가온 사람이 바로 12살 연상의 사업가 배 씨였습니다.
김청이 다니던 골프장 주인이었던 그는 김청의 어머니까지 살뜰히 챙기며 어필했고 김청은 듬직하고 자상한 모습에 의지하면서 순식간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김청의 어머니는 급작스러운 딸의 결혼 결심에 "차라리 동거라도 해보라"라며 말렸지만 김청은 반대를 무릅쓰고 1998년 5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김청의 결혼 소식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나는 신혼여행 일정과 역삼동에 마련한 신혼집까지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김청은 놀랍게도 신혼여행을 떠난 지 단 3일 만에 파경 소식을 전했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김청은 파경 직후 인터뷰에서 신혼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카지노로 직행해 도박을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양가 부모님 드릴 선물을 산다고 백 달러만 달라고 해도 안 주더라"라며 황당했던 심경을 고백했지요. 게다가 12살 연상의 남편은 알고 보니 이혼 경력까지 속인 상황이었고 결국 신뢰를 잃은 김청은 결혼 3일 만에 파경이라는 극단적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자 반려자로 믿은 사람에게 배신당한 아픔에 충격받은 김청은 이후 절에 들어가 1년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당시에 대해 김청은 "머리에 꽃만 꼽지 않았지, 넋이 나간 상태에서 미쳐있었다"라고 설명했는데요. 더불어 결혼을 선택한 과정에 대해 "내가 너무 힘들었던 시기에 그 틈을 타고 그 사람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사실 당시 원래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홧김에 한 결혼이었다"라며 후회하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59살에 떠난 헌팅 여행
초고속 결혼과 파경 소식을 연이어 전한 후 김청은 다시 어머니와 일에 집중하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일일 드라마계의 재벌가 시어머니 역할 전담으로 제2의 전성기를 찾았습니다. 드라마 속 악독한 시어머니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촬영 현장에서 김청은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베풀기로 유명한데요. 100인분 넘는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제작진 모두에게 담요 등 선물을 하기도 하지요.
촬영 외의 시간은 어머니와 세계여행을 하면서 지낸다는 김청은 멋진 싱글 라이프를 즐기면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짝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한 예능에서는 작년에 남자 헌팅을 하러 호주 골드코스트로 여행 떠난 경험을 털어놓으며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내가 찾아 나섰다. 가서 4개월 있다가 왔다"라며 "내가 헌팅 할 수 있는 나이가 없었다"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는데요.
"남들이 굉장히 강하고 세게 본다"라며 억울한 심경을 털어놓으며 "연하보다는 연상이 좋다. 연하든 연상이든 주도해서 이끌어줄 분"이라고 적극적인 구애를 했습니다. 이어 "음식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대인관계도 좋고 딸린 가족도 없다"면서 "법적으로 초혼이다. 아가씨다.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어필했습니다.
김청의 어머니 역시 환갑을 앞둔 딸이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는데요. 첫사랑을 놓친 아쉬움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딱 맞는 짝을 만나 행복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