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고난이 찾아왔을 때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다를 뿐이지요. 때로는 나에게 찾아온 시련과 고난 그 자체에 매달리고 집중하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요.
삶의 돌파구를 찾아 두 발로 세계일주에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사업실패, 이혼, 장애 등 제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나섰지만 두 다리만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겠다는 당찬 도전정신만큼은 모두 같아 보입니다.
언어장애로 학업 직업 모두 포기
돌파구 찾아나선 세계일주 23년째 ing
전 세계 최초로 "걸어서 세계일주"를 계획한 이는 영국 남성 칼 부쉬비입니다. 영국 공수특전단 출신인 부쉬비는 군대를 제대한 다음 해인 1998년 초에 "교통수단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두 발만을 이용해 세계를 한 바퀴 돈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같은 해 11월 1일 길을 나섰습니다. 그가 계획한 경로는 남미 끝인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를 시작으로 중남미의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열대우림,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가교인 베링해협을 지나 러시아와 몽골, 중동, 유럽 대륙을 잇따라 통과해 고향인 영국에 도착하는 길, 총거리 약 5만 8000km에 이릅니다.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것은 두려움이 큰일입니다. 그럼에도 부쉬비가 남다른 용기로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장애 덕분인데요. 15살 때 병원에서 언어장애인 난독증 판정을 받은 부쉬비는 이후 학업을 포기하고 엘리트 군인을 양성하는 영국 공수특전단에 지원했고 5번의 불합격 끝에 입대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군 복무 도중 난독증을 앓는 군인은 진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고 결국 12년의 군 생활을 정리하고 1997년 제대를 선택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하겠다던 그의 다짐이 무너진 그때 부쉬비는 이혼의 시련까지 겪으며 인생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느낌이었습니다. 고난을 맞은 그의 선택은 "더 극한 상황에 나를 몰아넣고 극복하면 다 해결될 것이다"라는 생각이었고 그는 5살 아들을 영국에 두고 도망치듯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걷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부쉬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도전의 이유와 목표가 변하고 발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9살이던 1998년 도전을 시작한 부쉬비는 현재 51살 중년이 되었습니다. 일생의 절반 가까이를 걷는데 보낸 부쉬비는 도전목표가 늘 바뀌지만 단 한 가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라는 의지만큼은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파나마의 열대 정글 '다리엔 갭'을 지날 때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을 피해 강물 속에 피신했고 베링해협을 건널 때는 바다 위 얼음덩이를 밟고 걸었지요. 14일 동안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베링해협을 걸어서 건넌 부쉬비는 무사히 러시아 땅을 밟자마자 새로운 위기를 맞았습니다.
불법 입국과 그의 군 전력이 드러나며 간첩으로 오인받아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된 것인데요.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90일간 체류 비자만을 허가했고 부쉬비는 비자가 만료되기 전 멕시코 등 외국으로 출국해 비자를 재발급 받고 돌아오는 방식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러시아가 부쉬비의 러시아 입국을 5년간 금지하면서 부쉬비는 도전 시작 15년 만인 44세 때 지구의 딱 절반을 걷고 여정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에 위치한 러시아 대사관까지의 도전을 새로이 추가했고 해당 도전을 끝난 다음 해인 2014년 러시아 정부는 부쉬비의 입국을 허가했습니다.
도전을 시작할 당시 도전을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던 부쉬비의 다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세계일주를 계획할 당시 12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미 수년의 시간이 지체되었음에도 부쉬비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지요. 2020년 현재 부쉬비는 이란의 입국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거리상으로 1년 정도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그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기원합니다.
사업 실패하고 떠난 세계일주
11년 만에 성공하고 집으로
23년째 길 위에 서 있는 남자 부쉬비가 들으면 좀 서운할지 모를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쉬비보다 2년 늦게 도전을 시작해 1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장 벨리뷰의 스토리인데요.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벨리뷰는 앞서 2000년 8월 18일 자신의 45번째 생일에 세계일주를 떠났고 11년간 64개국에 걸쳐 7만 5000km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쉬비처럼 '베링해협의 얼음 위를 걸어서 건너는' 위험한 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벨리뷰의 성공에는 여자친구의 루시 아캄볼트의 든든한 지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도전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벨리뷰는 사업실패로 파산한 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우울감에만 빠져 있던 그때 벨리뷰는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일주를 계획했고 여자친구인 아캄볼트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여자친구도 결국 그의 의지를 막지 못했고 오히려 11년간 여행하는 동안 물심양면 그를 응원했지요.
아캄볼트는 벨리뷰에게 매년 약 457만 원의 여행 비용을 보냈고 웹사이트를 개설해 벨리뷰의 도보세계일주 내용을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64개국을 무사히 거친 벨리뷰는 11년 만인 201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 여자친구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귀환했는데요. 아캄볼트는 11년 전보다 훨씬 수척해지고 흰머리도 늘어난 그를 여전히 사랑으로 맞이했습니다. 11년간 쉬지 않고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한 벨리뷰도 대단하지만 여행 중 멕시코에서 다른 여성과 9일간 사랑에 빠진 적도 있다는 그를 사랑으로 받아준 여자친구 아캄볼트 역시 대단한 마음이 아닌가 싶네요.
남자로 변장까지 했다
1000일 동안 세계일주한 여성
세계일주를 떠난 남자친구를 위해 뒷바라지하는 대신 직접 걸어서 세계일주에 도전한 여성도 있습니다. 스위스 여성 사라 마퀴스는 장장 1000일에 걸쳐 약 1만 6100km를 걸었는데요. 어려서부터 모험가 기질이 남달랐다는 그는 8살 때 강아지와 함께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낼 정도로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했고 꾸준히 도전해온 끝에 2010년 37살 나이에 걸어서 세계일주를 나섰습니다.
이미 수년에 걸쳐 뉴질랜드, 미국, 호주, 안데스산맥 등을 횡단한 경험이 있던 마퀴스는 2010년 최후의 여정을 계획하고 이후 3년 동안 시베리아와 몽골 고비사막, 중국, 라오스, 태국을 오직 걸어서 일주했습니다. 그리고 화물선을 타고 호주로 건너가 대륙 곳곳을 거쳤지요.
3년간 이어진 세계일주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거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 어려움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위기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위협들이었습니다. 라오스 정글에서 한밤중에 총을 든 마약 갱단으로부터 공격당했고 여성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몇몇 나라에서는 남자로 변장해서 일주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퀴스는 "여성이라는 게 자랑스럽지만 가끔 남성의 근육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는 심경을 전했습니다. 이어 "전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여성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덧붙였지요.
반려견과 함께하는 세계일주
코로나 때문에 잠시 멈춤
뉴저지 출신의 톰 투르시치는 17살 때 친구의 죽음을 겪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트스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보며 죽음이 가까이 있으며 언제든지 자신에게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이후 우연히 세계최초로 걸어서 세계일주에 나선 칼 부쉬비의 스토리를 알게 된 후 과거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을 해소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기 위해 세계일주를 계획했는데요.
2015년 26살 나이에 도전을 시작한 톰은 7대륙 횡단을 계획하고 뉴저지에서 텍사스까지 약 3200km를 걷는 동안 누군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텍사스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 들러 생후 3개월의 강아지 사바나를 만났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톰과 사바나는 찰떡궁합 단짝이 되어 약 29000km를 걸어 37개국을 횡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톰은 파나마 시티에서 칼을 휘두르는 괴한의 습격을 받았고 발톱의 반을 잃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온 데는 여행 동반자인 사바나의 힘이 큽니다. 실제로 "사바나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포기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사바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라고 말하는데요.
사바나와 서로 의지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온 그는 현재 아제르바이잔에 갇혀있습니다.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제한 조치 때문이지요. 아제르바이잔에서 몽골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갈 경로를 계획하던 그는 현제 몽골을 향해 여행을 재개할 수 있도록 봉쇄 조치 해제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때문에 일정이 한 달여 미뤄지긴 했지만 봉쇄 조치가 풀리는 즉시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그는 6개월 안에 뉴저지로 돌아가 사바나와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또 둘만의 여행을 안주 삼아 수다도 떨고 싶다며 작은 소망을 덧붙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