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의 사업 이야기는 어쩐지 성공보다 실패담이 많습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불안정성 때문에 보다 고정적인 수입을 노리고 사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지만 사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고민 없이 연예인으로서의 인지도만 믿고 시작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때문이지요.
반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방송 일을 접었다"라고 선언한 스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연예인들이 사업 자체보다는 홍보와 마케팅에만 집중해서 방송에 더 자주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인데요. 이제는 연예인이 아닌 사업가로 불리고 싶다는 걸그룹 출신 사장님의 쉽지만은 않았던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연예인 출신 사업가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주인공은 바로 가수 출신의 쇼핑몰 CEO 김준희입니다. 이제는 연예인의 이력보다 사업가로서 더 인지도가 높은 덕분에 성공한 1세대 쇼핑몰 사업가로 불리는 김준희는 사실 90년대 중반 가수로 데뷔한 1세대 아이돌 출신이기도 합니다.
19살이던 1994년 6인조 혼성그룹 뮤로 데뷔한 김준희는 이듬해 팀이 4인조로 개편되면서 유일한 홍일점으로 남아 팀의 마스코트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1집 수록곡 '새로운 느낌' 이후 큰 히트곡을 내지 못한 '뮤'는 자연스럽게 활동을 접었고 당시 소속사였던 대성기획이 여전히 김준희의 스타성을 믿은 덕분에 1996년 그룹 '체크' 출신의 멤버 오창훈과 함께 2인조 그룹 '마운틴'을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두 개 그룹을 거치며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김준희는 대성기획에 남아 새로운 그룹을 준비했습니다. 소속사와 협의하에 김준희가 주도해서 기획한 그룹은 힙합 여전사 걸그룹이었고 그 과정에서 옥주현과 타샤니 애니 등이 들어와 총 4명의 멤버가 확보되었지요.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멤버들이 이탈하면서 소속사에서는 힙합전사가 아닌 청순 콘셉트의 걸그룹을 원했고 청순한 콘셉트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긴 김준희는 팀을 탈퇴하고 데뷔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준희는 "핑클의 첫방송을 보고 많이 후회했다"라면서도 "내가 없어서 더 잘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겸손한 입장을 전했는데요. 이후 힙합을 콘셉트로 하는 새로운 그룹 결성을 위해 소속사를 옮겨 준비하기도 했지만 결국 데뷔하지 못한 김준희는 연기자로 전업해 영화 '오브라더스'에 출연했고 각종 예능에서 믿고 보는 게스트로 활약했습니다.
연기자로 전업해 영화와 예능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김준희는 이미 외도를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꿈꾸던 의류사업과 디자이너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것인데요. 김준희가 이런 꿈을 가진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김준희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에 이혼해 혼자 생계를 꾸려간 어머니가 동대문에서 오랜 기간 의상숍을 운영하셨고 이를 보고 자란 김준희는 자연스럽게 의류사업에 대한 꿈이 생긴 것이지요.
'동대문 노랑머리'라고 하면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랜기간 성실하게 사업을 이어간 어머니 덕분에 김준희 역시 자신있게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02년 문을 연 오프라인 매장 '더샵'은 시작하자마자 긍정적인 성과를 냈고 이에 욕심이 생긴 김준희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고급 의상을 수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상품을 선별하지 않고 본인이 좋아하는 옷을 가져다 판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팔리지 않는 수입 의상은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고 김준희는 사채업자들에게 협박전화를 받기에 이르렀지요. 돈 3천만 원이 없어서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던 김준희는 전화로 "죽이겠다"라고 협박하는 사채업자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 보니 어머니에게 홧김에 "술집이라도 나가겠다"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고 칼을 들고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습니다.
"돈 때문에 죽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에 죽을 결심을 접고 대신 연예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이미지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김준희는 길거리에서 옷을 내다 팔면서 제대로 된 사업에 입문했습니다. 새벽시장을 돌아다니는 김준희에게 사람들은 "연예인이 왜 저러고 다니지? 망했나?"라며 수군거렸지만 김준희는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을 접고 온라인 매장으로 전환해 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앞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택배로 물건을 보내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싸이월드를 통해 상품을 소개하다가 계정 정지를 받은 일을 떠올리며 직접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것인데요. 결제 시스템도 없이 현금으로만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은 첫날 주문만 150건이 들어오면서 소위 대박을 쳤고 혼자 감당할 수 없겠다고 느낀 김준희는 이후 1년여간 포토샵 등 쇼핑몰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은 후 2006년 디자이너 겸 MD 1명과 상담직원 1명, 배송직원 1명을 고용해 쇼핑몰 '에바주니'를 시작했습니다.
쇼핑몰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에바주니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4만 명, 월 매출 10억 원을 기록하면서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선두가 되었습니다. 모델부터 기획, 디자인, 스타일링, 마케팅, 그래픽에 사진이나 비디오 편집 작업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한데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실패한 경험 덕분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옷'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옷'을 찾아서 선보여야 한다는 점을 공략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2008년경 에바주니는 연 매출 100억 원의 궤도에 오르면서 이미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노하우들을 지켜가기만 하면 될 듯 보였지요. 하지만 조금 편안해져도 되겠다 싶을 때에 김준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LA에 위치한 패션스쿨 FIDM에서 유학을 시작한 것인데요.
당시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던 김준희는 33살의 나이에 유학이라는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섰고 LA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19살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는 한편 한국에서의 쇼핑몰 사업 역시 꾸준히 점검했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한 시간에 맞춰 오후 4시에는 메신저와 사이버 미팅을 통해 업무를 보고 새벽까지 패션스쿨의 과제를 해내며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지요.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겠다는 목표로 긴 시간을 투자해 패션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3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의 사업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신생 온라인 의류 쇼핑몰이 늘어나면서 과밀경쟁업종이 된 시장에서 1세대 쇼핑몰들은 고전하고 있었는데요. 에바주니 역시 이 시기 즈음 3년간 적자를 맞으면서 김준희는 그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빚을 내 회사의 부도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론칭해보겠다던 김준희는 개인적인 꿈을 잠시 접고 회사와 직원을 위해 집중했습니다. 당시에 대해 김준희는 "내 인생을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렸다. 일적인 사람 말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무조건 회사와 집에서 일하고 잠도 서너 시간만 잤다"라며 "밥 한 끼 먹을 돈이 없을 정도로 힘들어 혼자 밤새 우는 날이 많았다"라고 전했는데요.
덕분에 2014년 3년 만에 회사는 흑자로 전환했고 에바주니는 현재까지 살아남아 성공적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 1세대 쇼핑몰이 되었습니다. 김준희는 1세대 쇼핑몰 CEO로서 세대가 바뀌어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사업 외에 다른 것을 안 했다는 것이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라며 "방송을 함께 하면 롱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방송을 쉬었다"라고 사업가로서의 의지를 전했습니다.
한편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 힘들었다는 김준희는 자신 역시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어머니의 상처를 이해했다가 밝힌 바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혼한 어머니는 김준희에게 "아빠는 일하러 미국에 갔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이미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눈치챈 김준희는 어머니께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라며 일부러 더 상처되는 말을 하기도 했지요.
자신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이혼을 경험하면서 )엄마가 고생하신 것도 알게 됐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 빨리 재혼해서 손주를 보고 싶다는 어머니 말에 재혼 생각이 없다며 당황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이혼 후 결혼보다는 사업에 매진하며 "죽을 만큼 힘들고 도망가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일에 집중해온 김준희가 최근 반가운 결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5월 2일 가족과 친지들만 모시고 비공개 결혼식을 치른 김준희는 앞서 자신의 SNS를 통해 팬들에게 결혼소식을 알렸습니다. 예비신랑을 '임디'라고 지칭한 김준희는 "임디와 저 잘 살겠다. 좋은 날 함께 하는 저희 두 사람 앞으로 축복해 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달라"라며 인사했습니다.
오랜 시간 일에만 매달리던 CEO 김준희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까지 골인한 상대에 대해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크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연하의 김준희 남편이 현재 쇼핑몰 사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전해진만큼 사업 파트너로서도 찰떡궁합이 아닌가 싶습니다.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과 함께하는 김준희가 앞으로 사업가로서 어떤 새로운 도전과 성과를 보여줄지 기대되는데요. 앞서 회사의 경영난으로 미뤄뒀던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다시 한번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응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