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폭행 때문에 가요계 떠나서 수영 강사 됐다던 아이돌 멤버의 근황

올해 초 한 여배우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소속사의 폭행과 횡포에 대해 폭로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소속사는 해당 여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지인과 영화를 보러 간 사실을 몰래 데이트한 것으로 오해해서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매니지먼트와 소속 연예인 사이의 인권침해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소속사와 연예인의 관계는 비즈니스 파트너라기보다는 '노예계약'으로 맺어진 종속관계에 가까웠지요.

20년 전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이 스타 역시 소속사의 횡포로 인해 가수의 꿈을 접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폭행과 감금으로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낸 이후 연예계를 떠났던 그는 다시 돌아왔을까요?

1997년 HOT, 젝스키스와 함께 1세대 아이돌로 활동했다는 주인공은 바로 트로트계의 BTS 장민호입니다. 워낙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넘치는 끼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 활동을 꿈꿨던 장민호는 고등학교 시절 1년 넘게 부모님을 졸랐지만 허락이 떨어지지 않자 혼자서 하이틴 잡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무작정 여의도에 위치한 연기학원에 찾아갔습니다.

이후 장민호는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해 해당 학원에 등록했고 학교 수업이 마치면 인천에서 여의도에 있는 학원까지 다니며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학원 내 커뮤니티를 통해 광고대행사와 에이전시의 정보를 얻게 된 장민호는 어린 나이에 직접 음료를 사들고 회사를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프로필 사진을 돌리고 다녔지요.

덕분에 장민호는 광고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고 경력이 쌓이면서 조연을 거쳐 메인 모델까지 성장했습니다. 당시 장민호는 고등학생의 나이였지만 이미 광고당 500~700만 원의 수익을 벌어들였지요. 특히 스무 살이 되던 1996년에는 롯데제과의 껌 광고에 출연해 파격적인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광고 속 삭발한 장민호의 모습은 뚜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였고 해당 광고를 본 기획사들에서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껌 광고 이후 러브콜을 보낸 기획사 가운데 아이돌 그룹 결성을 제안한 한 소속사와 계약을 맺은 장민호는 1997년 4인조 그룹 유비스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춤과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아이돌 사이에서 유비스는 "춤보다 노래를 봐달라"라며 실력파 아이돌 그룹을 내세웠고, 실제로 유비스는 무대에서 아크로바틱한 동작이 포함된 격렬한 안무를 선보이면서도 고음의 노래를 라이브로 소화했습니다. 그중 '호근'이라는 이름으로 메인보컬을 맡아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인 멤버가 바로 장민호입니다. 본명인 장호근을 그대로 살려서 활동한 것이지요. 

유비스의 데뷔곡이자 1집 타이틀곡인 '별의 전설'은 댄스곡임에도 불구하고 슬픈 가사와 멜로디로 눈길을 끌었고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꽤 높은 순위에 랭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형기획사에서 나온 아이돌 그룹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유비스는 1998년 2집 타이틀곡 '특급작전'으로 활동한 후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당시 유비스가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것에는 장민호를 비롯한 멤버들이 소속사의 횡포를 못 이겨 활동을 포기한 이유도 있습니다. 소속사는 20대 초반의 어린 멤버들에게 폭언과 욕설에 폭행까지 횡포를 일삼았는데요. 이에 대해 장민호는 "일을 봐주는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많이 힘들게 했다. 사실 맞기도 많이 맞고 구둣발로 정강이를 차이기도 했다"라며 당시를 공포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표현했지요.

실제로 폭언과 폭행에 감금까지 당했다는 유비스의 멤버들은 2집 활동 이후 뿔뿔이 흩어졌고 장민호 역시 가수활동을 접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연예계 활동이다 보니 가족들에게 힘든 상황을 털어놓지도 못했고 가수에 대한 미련은 있었지만 "이렇게 살 거면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에 연예계를 떠난 것이지요.

이후 생계를 위해 수영 강사로 활동하던 중에도 주변에서는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권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장민호 역시 가수에 대한 꿈이 여전했기에 2004년 남성 발라드 듀오 '바람'을 통해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바람의 1집 타이틀곡 '사랑하다'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2집을 준비하던 2007년 장민호는 영장을 받고 군 복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가수의 꿈을 접어야겠구나" 생각한 장민호는 군 제대 후 외국항공사 스튜어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손을 내민 것이 바로 현 소속사 대표 김태훈. 김 대표는 장민호에게 트로트를 해보자"라고 제안했습니다. 유비스 활동 때부터 "노래가 트로트 같다"라고 지적받아 온 장민호에게 창법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우자는 전략을 내세웠지요.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보다 음악에 대한 절박함이 더 컸던 장민호는 망설임 없이 김 대표의 손을 잡았고 본격적으로 트로트를 배워가면서 자신과 딱 맞는 장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트로트 싱글 '사랑해 누나'를 시작으로 트로트 무대에 선 장민호는 2012년 KBS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 참여해 가수 렌과 함께 결성한 2인조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나기도 했는데요.

해당 오디션은 대형 기획사인 싸이더스HQ에서 우승팀을 중심으로 5인조 그룹을 만든다는 기획으로 준비된 프로그램이었고 장민호는 싸이더스HQ로부터 팀 구성을 위해 현 소속사에서 나와 달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지요. 하지만 장민호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가수로서 새로운 생명은 불어넣어 준 김태훈 대표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고 트로트가 자신의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2013년 1월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디션을 마친 장민호는 다시 트로트 가수로 돌아왔습니다. 정규 1집 타이틀곡 '남자는 말합니다'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트로트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고 각종 시상식에서 성인가요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지도 했지요.

아이돌 출신다운 꽃미모와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갖춘 장민호는 중장년층 사이 팬덤이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발매한 정규 2집과 싱글 앨범까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장민호는 자타공인 트로트계의 BTS가 되었지요.

다만 무대에 자주 서고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는다고 해서 경제적 상황까지 화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명시절이 길었던 만큼 오랜 기간 생활고를 겪었고 핸드폰 요금 내기도 힘들 정도의 생활도 했지요. 그럼에도 간절히 원하던 '가수의 꿈'을 이루었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온 장민호는 44살의 나이에 과감한 도전을 하면서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것이지요.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인지도를 가진 기성 가수인데다 44살의 나이에 오디션 프로 도전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는데요. 동료 가수들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알리지 않고 오디션에 참가한 장민호는 "단 2주 만에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세 가수가 되었습니다.

한편 불과 몇 달 전 미스터 트롯에 참가하기 전만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빠듯한 삶 때문에 연애와 결혼 모두를 포기했었다는 장민호는 이제서야 "결혼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미혼으로 알려진 장민호에게는 이미 세 명의 귀한 아이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장민호가 사랑을 듬뿍 쏟고 있다는 아이들은 필리핀과 태국에 있는 3명의 후원 아동입니다. 장민호는 앞서 2006년부터 국제어린이 양육기구 한국컴패션과 인연을 맺고 현재는 컴패션밴드로 활동하며 각종 봉사와 재능기부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민호는 평소 180cm의 키와 건강미 넘치는 몸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등 남성스러운 이미지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핸드폰 요금 낼 돈이 빠듯할 정도의 상황에서도 봉사와 후원을 이어가는 배포와 데뷔 24년 차에도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오디션 프로에 도전하는 용기야말로 장민호의 상남자 매력이 빛난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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