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 사태로 다중이용시설의 방문이 제한되면서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 손해를 입고 있는데요. 한편 금전적, 정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또 다른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비신랑신부들이지요.
특히 중국에서는 지난 2월 2일 '20200202'가 앞으로 해도, 뒤로해도 숫자가 똑같아 길일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커플들이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계획하고 있던 날이었는데요. 당시 시진핑은 "각 지역 혼인신고 관련 기관은 혼인신고 접수계획을 취소하고 소독과 직원들의 체온 체크를 엄격히 진행하라"라는 긴급 공지문을 내려 이를 저지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예신과 예랑들은 결혼식 연회는 물론 혼인신고조차 연기해야 했지요.
공터에서 10분 만에
초고속 결혼식
다만 중국에서 결혼식을 미루는 것은 관습적으로 좋지 않다는 인식이 강한데요. 관습이나 미신에 대한 신뢰가 높은 만큼 결혼식을 미루는 대신 '코로나 19식 결혼식'을 선택한 이들도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중국 산둥성의 리즈창과 위홍옌 부부는 야외의 공터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감염 예방을 위해 밀폐된 공간을 피한 것이지요.
결혼식에 참석한 인원은 총 5명, 결혼식 진행 시간은 단 10분. 속전속결로 치러진 해당 결혼식에는 신랑, 신부의 부모님을 포함해 5명 만이 참석했고 사회와 주례 역시 신랑 측 아버지가 대신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신랑과 신부는 빈 공터에서 서로 결혼의 서약을 맹세하고 맞절을 하는 것으로 짧은 결혼식을 마무리했지요.
심지어 10분 만에 끝난 결혼식 직후 신랑 리즈창은 가족들과 식사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나야 했는데요. 산둥대학교 병원 산부인과 의사인 리즈창이 코로나19 대응으로 바쁜 병원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웨딩드레스는커녕 부케도 없이 10분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까지 보낸 신부 위홍옌은 자신의 결혼식에 대해 "만족스러웠다"라며 "남편이 결혼식에 부담을 갖지 않고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를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습니다.
결혼식장에 신랑신부가 없다
생중계 결혼식
한편 보다 파격적인 방식으로 결혼식을 진행한 커플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싱가폴에서는 신랑신부 없는 결혼식이 진행되었는데요. 중국 후난성 출신인 신랑 조솁 유와 신부 강 팅은 결혼식에 앞서 지난달 24일 고향에 다녀왔고 때문에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알려진 후베이성과 인접한 후난성에 다녀온 신랑신부를 걱정하는 하객들이 늘어났지요.
하객들의 불안감을 이해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연기하고 싶었지만 호텔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두려워하는 하객들과 함께 결혼식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신랑신부는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지요. 신랑신부는 호텔방에서 하객들이 기다리는 결혼식장으로 화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신랑신부는 축배사를 한 뒤 샴페인을 터뜨리는 장면까지 온라인으로 생중계했고 하객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즐겼는데요. 코로나19 때문에 부모님조차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이었지만 신랑신부는 하객들을 위한 최선책이었다며 자신들의 결혼식에 대해 만족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220쌍 커플 마스크 키스 진풍경
마스크 결혼식
코로나19가 만든 결혼식의 진풍경은 필리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지난 20일 필리핀 바콜로드시 관공서에서는 220쌍의 커플이 마스크를 낀 채 키스를 하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었는데요. 시 주최로 매년 진행되는 해당 결혼식은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취소되지 않았고 까다로운 선제조차를 거친 후 진행되었습니다.
20일 기준 필리핀 현지의 코로나19 확진자의 수는 3명, 사망자는 1명으로 1000여 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온 우리나라와 비교해 심각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바콜로드시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이는 결혼식장이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것을 고려해 2020쌍 신랑신부 전원에게 최근 2주간 해외여행 기록을 제출받았으며, 예식 전 참석자 전원의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를 쓰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해당 결혼식에 참석한 220쌍의 신랑신부는 마스크를 쓴 채 결혼식장에 등장했고 바콜로드 시장이 성혼선언문을 낭독하자 마스크 위로 입맞춤을 나눠야 했는데요. 이날 결혼식을 올린 신랑은 "마스크를 쓰고 키스를 하니 느낌이 색달랐지만 감염예방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라며 마스크 결혼식에 긍정적인 입장을 전했습니다.
64개국에서 모인 3만 명 합동결혼식
통일교 축복식
한편 필리핀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는 마스크 없이 무려 3만 명이 참석하는 합동결혼식이 진행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지난 7일 통일교는 가평 청심평화월드에서 전 세계 64개국에서 온 미혼가정 6000쌍과 기혼 가정 9000쌍을 포함해 약 3만 명의 신도들이 참석한 결혼식, 일명 축복식을 진행했습니다.
1954년 고 문선명 충재가 세운 통일교는 신자들끼리만 결혼이 가능하며 대다수는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1961년부터 축복식이라는 이름으로 내부 합동결혼식을 진행했고 문선명 총재가 죽은 현재는 그의 아내인 한학자 총재의 주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축복식은 코로나19의 감염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연기나 취소 없이 진행되었는데요. 현재와 같은 심각 수준의 단계는 아니었지만 당시도 24번 확진자까지 나온 상황으로 국내 코로나19의 공포는 확산되는 중이었으나 통일교는 이를 무시하고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행사를 그대로 진행한 것이지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수백만 원의 위약금을 물고 예식장을 취소하고 신혼여행을 포기했다는 예비신랑신부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전해지고 있는 지금 국내 신도가 30명에 이른다는 종교집단에서 대규모 결혼식 진행을 밀고 나갔다는 점은 통탄이 나오는 대목인데요. 종교적 의미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