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인사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이자 신임 문체부 차관인 최윤희는 80년대를 지낸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얼굴인데요. 80년대 수영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아시안게임 수영 종목 금메달 5개라는 엄청난 기록을 안겨준 스포츠 스타이기 때문이지요.
김연아, 손연재 합쳐놓은 인기
1982년 15살의 나이에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여자 배영 100m와 200m, 개인혼영 200m에서 모두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해 3관왕을 차지한 최윤희는 괴물 같은 기록과 함께 귀여운 외모로 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요. 4년 뒤인 1986년 서울 대회에서도 배영 100m와 2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우승해 아시안게임에서만 금메달 5개를 땄습니다.
1986년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에는 모델과 TV 리포터 등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인기는 지금의 김연아, 손연재에 못지않은 정도였지요. 실제로 최윤희는 신인 여배우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스포츠 스타로서는 최초로 등장했고 당시 광고 출연료로 무려 1억 원을 받아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억대 개런티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큰 광고효과를 가져왔다고 하네요.
방송활동을 통해 국민 여동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시기에 정작 최윤희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는데요. 당시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보컬로 활동 중이던 가수 유현상이 그 주인공입니다. 각자 방송활동을 하던 중 KBS 방송국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유현상이 먼저 최윤희의 여신 미모에 반하면서 사랑을 싹틔우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유현상이 수영밖에 모르고 살아온 최윤희를 위해 미술관 전시회 등 다양한 데이트 코스를 준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스포츠 미녀와 헤비메탈 가수와의 사랑이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시 헤비메탈 음악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인 편이 아니었고 백두산 밴드와 유현상의 대중적 인지도는 최윤희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13살의 나이차역시 두 사람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었는데요. 실제로 최윤희의 어머니는 최윤희를 데려다주기 위해 집 앞까지 온 유현상을 보고 "상대가 돼야지"라고 혀를 차며 말조차 섞지 않았고 두 사람의 교제를 크게 반대했습니다.
이에 최윤희는 단식투쟁까지 하며 어머니를 설득하고자 나섰고 이를 알게 된 유현상은 미안한 마음에 결별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눈물의 이별을 한두 사람은 데이트 중 함께 들렀던 미술관에서 우연히 재회하면서 다시 교제를 시작했고 바로 결혼까지 계획했습니다. 다만 장모님의 반대가 워낙 심하다 보니 둘만의 비밀결혼식을 택했고 한 기자의 도움을 받아 봉선사라는 절에서 식을 올리게 되었지요.
1991년 6월 결혼식 당일 유현상은 방송 스케줄을 핑계로 집을 나섰고 최윤희는 "학원 다녀올게"라고 집을 나와 결혼식장으로 나섰는데요. 비밀리에 결혼식은 치렀으나 피로연장에서 최윤희의 전 다이빙 코치와 우연히 마주치면서 결혼 소식이 최윤희의 어머니에게도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뒤늦게 인사를 갔지만 최윤희의 어머니는 여전히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어머니의 등에 대고 "열심히 살겠다"라며 절을 올렸지요.
두 사람의 비밀결혼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다소 과격하고 거친 이미지의 로커와 국민 여동생의 비밀결혼은 "납치해서 강제로 결혼했다더라", "협박 당하고 있다더라" 등 다양한 루머를 낳을 정도로 믿기 힘든 소식이었는데요. 최윤희의 팬이었던 한 라디오 방송의 PD는 결혼 소식을 접하고 유현상의 음반을 집어던지며 후배들에게 "이제부터 유현상 노래 틀지마"라고 소리 질렀다는 일화도 있지요.
16년간 외조 이어온 사랑꾼
거친 이미지인 줄로만 알았던 유현상은 사실 누구보다 달달한 사랑꾼이었습니다. 2001년 미국에서 수영 코치 제안을 받은 아내 최윤희를 위해 기러기를 자처할 정도인데요. 최윤희는 남편의 응원 덕에 시애틀에 있는 시부모님 곁으로 가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동시에 두 아들의 교육 역시 미국에서 해낼 수 있었고 그 시간은 무려 16년간 이어졌습니다.
긴 기러기 생활 동안 유현상은 오로지 아내와 아들들을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헤비메탈을 잠시 내려놓고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 '여자야', '갈 테면 가라지' 등 히트곡을 내기도 했는데요. 2000년대에는 예능 프로에서도 활약한 덕분에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장윤정 못지않게 많은 행사를 소화하기도 했지요.
하루 10군데 이상 행사를 돌다 보면 마지막에는 목이 아파서 노래가 안 나올 정도였지만 유현상은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내기 위해 매니저도 없이 혼자 고군분투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유현상의 노력 덕분에 두 아들은 각각 치과의사와 셰프의 꿈을 이루었고 아내 최윤희 역시 스포츠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6년 길었던 기러기 생활을 청산하고 최윤희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요. 2018년 한 토크쇼에 출연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고, 특히 최윤희는 "자다가도 눈 뜨면 남편을 쳐다보고 손을 꼭 잡고 잔다.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다"라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실제로 최윤희는 오랜 시간 혼자 지낸 남편을 위해 아침마다 무쇠솥에 밥을 짓고, 누룽지를 만들어 주며 지난 세월을 보상하고자 노력했지요.
아내 최윤희의 지극한 보답을 받고 있던 유현상이 최근 다시 "아내를 위해 적극 외조에 나서겠다"라고 선언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아내 최윤희가 막중한 직책을 맡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임명된 아내를 위해 "아내를 더욱더 사랑해주고 설거지와 청소도 더 많이 하겠다"라고 나선 것이지요.
더불어 유현상은 아내에 대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밥상을 차려주고 자기 할 일 다 하고 6시 20분에 출발해 8시쯤 회사(한국체육산업개발)에 도착하는 루틴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면서 아내의 성실한 태도를 극찬하기도 했는데요. 남편의 신뢰와 응원을 받은 만큼 행정가로서도 선수 시절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해 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