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마네는 원조 맥주 덕후? 마네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

영국의 미술사학자인 곰브리치의 '미술은 없고 미술가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은 미술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들마저도 100여 년 이상 해석에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전통을 깨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낸 화가, 마네와 그의 작품 '폴리베르제르의 바(1882)'를 TIKITAKA와 함께 만나봅시다.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보통 모네와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두 화가는 인상주의를 개척하며 알게 된 후 평생 가깝게 지낸 동료였다고 하네요. 마네와 모네는 전통적인 미술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비슷한데요. 당시 화가로 성공하려면 파리 '살롱전'에서 인정을 받아야 했지만 두 화가 모두 비평가들의 조롱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인정받던 화풍은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이상적인 모습으로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요즘 어플을 사용해 비율이나 조명을 달리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 방법과 유사한 것이지요. 하지만 마네나 모네는 이를 거부하고 '보이는 대로' 그리는 화가였는데요. 이들의 화풍은 이후 인상주의로 불리며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마네의 그림 중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은 올랭피아(1863),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등이 있는데요. 올랭피아의 누드 여성은 흑인 시종이 들고 있는 꽃다발이나 욕망을 상징하는 고양이를 봤을 때 매춘부로 보입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역시 대낮에 공원에서 벌거벗은 매춘부와 놀고 있는 신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요. 두 작품 모두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을 표현해 당시 미술계에 큰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올랭피아(1863)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이와 더불어 마네의 또 다른 대표작 '폴리베르제르의 바(1882)' 역시 논란의 작품이었는데요.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폴리베르제르 술집으로 레스토랑과 극장, 주점이 결합한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매일 밤 2천여 명의 파리 상류층들이 즐겨 찾던 유흥가였다고 하는데요.

폴리베르제르의 바(1882)

작품의 중심인물인 여종업원 역시 실제로 폴리베르제르에서 일했던 쉬종이라는 여성입니다. 쉬종은 꽃무늬가 가슴 아래쪽까지 수놓아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그 표정이 매우 지쳐 보입니다. 당시 여종업원들이 은밀히 매춘을 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쉬종의 뒤에 보이는 광경은 거울에 비친 폴리베르제르의 내부인데요. 특히 오른쪽에 보이는 남성과 거울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이 마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은 받아왔습니다. 심지어 정면에 보이는 쉬종은 상념에 빠진 듯 초점이 멍한 상태인데 반해 거울에 비친 쉬종의 뒷모습은 남성에게 시중을 드는 듯한 모습이라는 점도 논란이었지요.

이에 대해 현대의 비평가들은 거울 속의 남자는 방금 전 지나간 손님과 나누었던 매춘 제안 대화의 잔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쉬종의 실제 표정이 저리도 우울해 보인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순간을 포착해 종종 공간의 불규칙성을 이용해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곤 했으니 의미 있는 해석이지요.

 

호주의 사진 전문가인 말콤 파크 박사는 보다 과학적인 접근으로 마네의 그림을 옹호하고 나서기도 했는데요. 그는 그림 속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사진을 촬영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이런 각도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Grag Callen, 2000

쉬종의 앞에 놓인 소품에도 특이점이 있습니다. 유리잔에 담긴 두 송이의 장미는 고대에 비너스에게 헌화한 장미를 떠올리게 하며 쉬종이 당대 남성들에게 비너스와 같은 존재였음을 나타내는데요. 특히 그중 하얀 장미는 순결을, 분홍장미는 신성한 사랑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쉬종 앞에 놓인 술병 중 샴페인은 부유한 상류층이 마시던 술이며 맥주는 하류층 계급이 마시던 것인데요. 이를 함께 둔 것은 당시 폴리베르제르 술집을 찾던 사람들이 그만큼 다양했다는 방증이겠지요. 특히 빨간색 삼각형이 그려진 맥주병은 쉬종의 양쪽에 놓여 눈길을 끄는데요. 실제로 마네가 즐겨마시던 맥주 바스입니다.

바스는 1777년 생산되기 시작한 영국의 에일맥주인데요. 바스에는 그림을 잘 그리게 하는 성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카소 역시 바스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바스병 라벨에 붙은 빨간 삼각형의 문양은 피카소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때문에 피카소는 '바이올린과 바스 맥주', '바스병과 잔', '바스병과 잔 그리고 담뱃갑' 등 바스가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출처-중도일보

파이프 바스병 주사위 (피카소, 1914)

마네의 유언작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실제로 마네가 국전에 출품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데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는 관절염으로 크게 고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네는 당시 본인의 증상이 매독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곧 죽을 것이라고 자학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 사교계 친구들과 어울리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이 더 이상 자신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한데요.

 

작품 속 거울에 비친 술집 내부에는 마네가 사랑했던 정부 '메리 로랑'을 비롯해 당대 유명한 여성 인사들이 그려져 있고 그들은 더 이상 마네의 소유가 될 수 없어 보입니다.

쉬종의 초점 없이 우울해 보이는 눈동자는 마네 자신이 당시에 느끼고 있던 상실감과 젊음에 대한 동경을 투영해 놓은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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