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월 4천 벌던 스타강사가 영어학원 접고 상경한 이유

자신의 직업적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신가요? 일을 하다 보면 상사의 질책에 자신감은 떨어지고 업무 압박감에 주눅이 들기도 하죠. 결국 자신감 없는 태도는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이로 인해 잦은 실수가 생기면서 자기 확신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성실하게 노력한 스스로를 칭찬하고 믿어주는 것 역시 중요한 직업 능력 아닐까요? 본인의 실력을 믿기 때문에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늘 도전한다는 직업인이 있습니다. "안전기반 위에 1등보다 도전하는 꼴찌는 원한다"라는 주인공은 드라마 작가 백미경입니다.

드라마 '힘쎈여자도봉순', '품위있는그녀', '우리가만난기적', '마인'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백미경 작가는 작품 초반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마인'의 애청자임을 고백한 방송인 유재석은 "멱살 잡고 끌고 가더라"라는 표현을 쓸 정도인데요. 이처럼 타고난 스토리텔러로 보이는 백미경 작가가 실은 10년 넘게 영어강사로 일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죠.

대구에서 나고 자란 백미경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즐기는 아이였습니다. 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글쓰기 대회를 휩쓸었고 자연스럽게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었죠. 실제로 2000년에 제1회 MBC 프로덕션 영화 시나리오 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의 기회를 얻기도 했는데, 당시 신인작가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로 시나리오를 뺏기다시피 하는 억울한 경험을 하면서 업계에 대한 환멸감을 가지고 펜을 놓았습니다.

이후 "내가 잘하는 일로 돈을 먼저 벌고 생계가 보장된 상황에서 다시 글을 쓰겠다"라고 결심한 백 작가는 영문학과 전공을 살려 영어 강사로 활동했는데요. 당시에 대해 백 작가는 "작가로서 능력보다 강사 능력이 더 좋았다"면서 "소위 3등급을 1등급으로 만드는 강사로 너무 유명해져서 학생들이 줄을 섰다"라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집필한 교재로 강의에 나섰다는 백미경 작가는 영어강사로 활동하면서 월 3~4천만 원을 벌었습니다. 이후에는 직접 영어학원을 차리고 강사이자 원장으로 12년간 학원을 운영했다고.

소위 잘나가는 강사로 자리 잡아 수천만 원의 월 수익까지 보장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백미경 작가는 10년 넘게 쌓아온 강사로서의 노하우와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고 '신인작가'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강사'로 너무 잘 나갔기 때문에 '작가'로 회귀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백 작가는 더 늦기 전에 꿈을 실현하고자 다시 펜을 잡았죠.

이후 백 작가는 연이어 3개 공모전에서 입상했습니다. 2012년 제10회 경상북도 영상 콘텐츠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고 2013년 SBS 극본 공모전 대상, 2014년 MBC극본공모 미니시리즈부문 우수작까지 선정되었습니다. 그중 SBS단막극 '강구이야기'를 통해 작가로 정식 데뷔하게 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백 작가는 "공모전에서 세 번 당선되었는데, 내가 할 말 다 하는 성격이지 않느냐. 신인 때도 미니 쓴 작가처럼 행동했다"면서 "내 작품을 모니터링하던 담당자가 인격적인 모독을 하길래 '읽어는 보시고 하는 말이냐'라고 한 마디 했다. 그랬더니 미운 털이 박혀서 계약이 안됐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신인작가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고 아쉬울 수 있는 상황에서 백 작가는 전혀 굴하지 않고 "너네가 안 해? 알았어. 그럼 다른데 갈게" 하고 쿨하게 돌아섰다고.

앞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을'일 때 '갑'처럼 일하는 게 목표라고 밝힌 바 있는 백 작가의 당당함은 자신의 실력과 성실함을 믿는대서 나오는 것이겠죠.  다만 자신감과 기세등등함이 매력이자 실력인 백 작가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줄어든 시기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드라마 '날녹여주오'의 집필과 제작을 동시에 맡았던 때입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작가의 대본을 아무도 함부로 얘기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작가가 실패하는 것 같다. 내가 '날녹여주오'때 그랬다"라고 고백한 것. 그러면서 백 작가는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공공재를 이용해서 협업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남에게 폐를 끼치더라"라고 회상했습니다.

시청률이 끝없이 추락하면서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을 정도였다는 백 작가는 드라마 실패 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다고 고백했습니다. 때문에 '나의 에너지는 끝났나, 이제 그만 써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던 시기도 있었다고 고백했죠.

다행히 슬럼프에 빠진 백 작가를 다시 살린 건 그의 성실함이었죠. 데뷔 후 8년 동안 총 8개 작품을 완성한 백 작가는 공개된 작품 말고도 자신의 컴퓨터에 수많은 기획안이 저장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수많은 콘텐츠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쏟아지다 보니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를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하고 내가 확신을 가지고 쓴 작품도 보조작가 등 다수 의견을 수합해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실패를 통한 성장,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성실함으로 더욱 단단하게 무장된 백미경 작가는 최근 드라마 '마인'으로 다시 한번 작가로서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스릴러의 쫀쫀함과 순간순간 등장하는 블랙코미디의 재미, 그리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며 편견에 맞서는 주제까지 모든 것이 '백미경스러운' 작품이었죠.

최근 예능 토크쇼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백미경 작가는 "운이 좋게도 대본 이상으로 소화해 주는 좋은 배우들을 만났다"면서 박보영, 김희선, 김선아, 이보영, 김서형 등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는데요. 그러면서도 "나만 쓸 수 있는 장르가 있다. 작가라면 이런 자신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면서 "안전기반 위에 1등보다 도전하는 꼴찌는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또 도전하다 실패하면 또 품위있는 그녀, 마인 같은 걸 또 쓰면 된다. 난 돌아갈 곳이 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죠.

여성 서사를 잘 쓰는 작가로 알려진 백미경 작가, 백 작가의 작품 속 여주인공들은 어쩐지 모두 백 작가를 닮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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