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외치는 요즘 애들은 나약하다? 스스로를 '프로불편러'로 칭하고 자신이 속한 회사에 늘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90년생 직장인이 있습니다. 6개월짜리 인턴에서 입사 3년 만에 정직원이 되기까지 겪었던 고용불안의 경험을 줄이고 후배들에게 보다 나은 고용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는 당찬 포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취준 첫 학기에 자기소개서만 50장 넘게 썼다는 주인공은 SBS디지털뉴스랩 이은재PD입니다. PD이자 진행자로서 '재재'라는 예명이 더 익숙한 그는 '타고난 방송인'의 끼를 선보이면서 뉴미디어계의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때문에 '사학과'라는 그의 대학 전공은 무척 의외입니다.
중학교 시절 육상부였다는 이은재 PD는 예체능 계열에 골고루 재능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는 미대 진학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적도 늘 최상위권을 유지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과서를 통으로 외워가며 공부한 덕분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PD의 부모님은 전교1등을 하는 딸에게 "예체능은 취미생활로 즐기라"라며 보다 안정적인 방향의 전공을 권했고 이 PD는 별다른 목표나 이유 없이 사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이화여대 사학과 10학번이 된 이은재는 여전히 예능 분야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터라 '돈 벌면서 할 수 있는 예체능 분야'를 생각한 끝에 광고학과를 복수전공했습니다. 대학시절에도 3학년 때는 사학과 대표를 4학년 때는 인문대 대표를 맡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늘 열정을 쏟는 학생이었지요.
하지만 '내가 열심히 잘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취업의 문은 높았습니다. 대졸자의 취업률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다 그중 인문계열 취업률은 60%도 안되는 상황에서 2014년경 취준생이 된 이은재는 문과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다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철강회사를 포함해 50장 넘게 자소서를 쓰면서 '육상부 출신에 미술까지 잘하는 전교1등'의 자존감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복수전공한 분야를 살려 광고회사에 입사를 하기도 했지만 너무 안 맞아서 단 2주 만에 그만두었고, 당장의 일자리가 급했던 이 PD는 구인사이트를 전전하다가 '스브스뉴스' 스토리텔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당시 채용공고에 따르면 근무기간은 6개월, 주 5일 하루 7시간 근무, 일당은 4만 5000원, 그야말로 한 번 쓰고 버린다는 '티슈 인턴'이었지요.
인턴직으로 고용된 이 PD는 카드 뉴스를 만드는 스토리텔러로 일했고 6개월의 인턴생활이 끝나자 상근직 프리랜서인 에디터로 직함이 바뀌어 업무를 이어갔습니다. 이름조차 모순적인 '상근직 프리랜서' 역시 월급은 200만 원이 채 안 되었고 고용은 불안정했으므로 이 기간 동안에도 이 PD는 여전히 취준생의 신분으로 구직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당시에 대해 이 PD는 "힘든 시기였다. 특히 면접에서 떨어진다는 게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 않냐. 떨어지고 나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여기저기 찾게 된다. 사실 외부적 환경 탓이 클 텐데 자꾸만 나에게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라며 힘들었던 심경을 전했습니다.
특히 기준이 상대적으로 불분명한 임원 면접에 연달아 떨어질 때는 '내가 쇼트커트이기 때문인가'라는 고민까지 했다는 이 PD는 최근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취업 준비 중인 후배들을 향해 "그냥 그분들과는 안 맞는 거다. 그분들이 핸들을 구하는 자리였는데 여러분은 바퀴였던 거라고 생각해달라.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했습니다.
한편 인턴과 프리랜서 기간 동안 면접 볼 때 쓰기 위해 1년간 월차도 안 쓰고 3~4년을 취준생으로 휴가 없이 살아온 이 PD는 2018년 스브스뉴스가 뉴미디어부문 서비스를 통합 담당하는 자회사 SBS디지털뉴스랩으로 독립하면서 자회사 소속 정직원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뉴미디어 시장의 트렌드가 카드뉴스에서 영상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문명특급'이라는 콘텐츠가 만들어졌고 그보다 더 자연스럽게 팀원들의 만장일치로 이 PD는 문명특급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시장의 빠른 변화를 감안해 늘 "3개월만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아이템에 열정을 쏟는다는 이 PD와 팀원들은 '숨듣명', '유교걸'과 같은 히트템을 낸 덕분에 구독자 93만 명, 올해 누적조회수만 1억뷰를 찍는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문명특급의 인기에는 진행자 재재로 변신한 이은재 PD의 활약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이나 작사가가 "유재석만큼 준비하고 신동엽처럼 진행한다"라고 극찬한 이 PD는 무엇보다도 인터뷰 상대를 회화화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면서도 공감가고 흥미로운 인터뷰 결과물을 내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PD는 아이돌을 비롯한 다양한 연예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연예인은 나랑 다른 차원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똑같은 사람이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직장인으로서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인터뷰에서 가능하면 이상형, 연애, 결혼 등의 질문을 하거나 애교나 개인기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력의 결과물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하지요.
최근 온라인 콘텐츠를 넘어 공중파에 진출하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는 대세 방송인으로 거듭난 이은재 PD는 스스로를 연반인으로 부릅니다. '연예인 수준의 스케줄인데 봉급은 일반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인데, 연봉에 대한 은근한 디스가 포함된 이 신조어 외에도 이 PD는 꾸준히 자신이 속한 직장과 팀의 처우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서 예능프로 '정산회담'에 출연했을 때는 "현재 직장을 그대로 유지할지, 프리를 선언하고 연봉 수준을 높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으면서는 "연봉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도 "26세~30세 사회 초년생들의 평균 월급이 200만 원"이라고 하자 "맞다. 나도 그렇게 평범한 수준이다. SBS 계열사라 연봉이 높지 않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세자금 대출 22만 5천 원, 어머니 용돈 50만 원, 교통비 55만 원 등 고정지출이 있다"라고 고민을 덧붙였지요.
직장인 신분으로 처우문제를 계속 지적하는 이유에 대해 이 PD는 "나를 보고 이 업계에 들어오고 싶다는 후배들을 본 다음부터다"라고 말했습니다. 90년 대생에 대해 "불평불만하면서도 주어진 일을 너무 성실히 해내는 것이 문제"라면서 뉴미디어 업계의 불안정한 노동구조를 조금이나마 바꿔보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습니다.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뉴미디어 업계와 업계 조상 격인 이은재 PD의 동반성장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