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굴욕소녀가 10년 후 일본에 가서 한 일

지난 2월 일본의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은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에 납득하느냐"라는 다소 황당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납득한다'가 71.6%로 '납득할 수 없다'라는 의견 28.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댓글 가운데는 "정치와 문화는 별개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재밌다. 영화를 꼭 보라"라는 의견도 있었지요. 더불어 "음악에서는 BTS에게, 영화에서는 기생충으로 한국에 추월당했다. 너무 부럽고 억울하다"라는 목소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BTS와 기생충에 이어 또 한 가지 일본 대중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우리나라 문화계의 보물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일본의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배우의 소식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데뷔 18년 차의 베테랑 배우이지만 일본에서는 신인배우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는 여배우를 만나볼까요?

최근 일본의 굵직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주인공은 대한민국 대표 20대 여배우 심은경입니다. 심은경은 어린 시절 내성적인 성격을 걱정하던 부모님이 성격을 고쳐보려고 보낸 연기학원에서 연기에 흥미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아역배우로 성장했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3년 드라마 대장금에서 단역을 맡은 것이 데뷔였습니다.

이후 영화 '도마안중근'과 '드라마 '결혼하고싶은여자', '장길산'등에 출연하며 연기에 재미를 붙이던 심은경은 드라마 '단팥빵'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주인공의 회상 장면에 짧은 분량 출연했지만 당찬 이미지와 똑 부러지는 연기력은 눈에 띄었지요.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의 아역배우 심은경은 극중 자신의 배역에 대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지만 조금 여성스러웠으면 좋겠다"라고 인터뷰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후 주연급 아역배우로 자리 잡은 심은경은 故 정다빈, 하지원, 이소연, 이지아 등의 아역을 맡았습니다. 아역배우의 연기에 따라 드라마 초반 시청률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심은경의 똑 부러지는 연기는 감독들에게 믿음을 주었지요.

그리고 2008년 심은경은 서태지와 함께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광고 속에서 심은경은 서태지의 음악을 듣다가 실제 서태지가 등장하자 "아저씨 누구세요?"라며 굴욕을 안겼고 해당 광고가 이슈 되면서 심은경은 한동안 '서태지 굴욕소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데요. 서태지가 데뷔할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심은경은 그의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는 팬입니다. 심은경은 서태지의 공연을 직관한 후 "관객을 압도하는 노래와 무대매너를 보면서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연기로 감동을 주는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광고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심은경은 2009년 영화 '불신지옥'을 통해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게 됩니다. 해당 작품을 통해 심은경은 이전까지 귀여운 아역배우 이미지를 벗어나 소름 돋는 연기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는데요. 심은경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외톨이 소진 역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떨어져 혼자 지낼 정도로 집중했고 그 결과 관객을 압도하는 섬뜩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영화 '불신지옥' 이후 더 이상 누군가의 아역이 아니라 작품 속 중심 배역을 당당히 차지하게 된 심은경은 영화 '반가운 살인자', '퀴즈왕'과 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와 '태희혜교지현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역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성인 배우로 변신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주연급 성인 배우로 발돋움하던 시기에 심은경의 선택은 조금 의외였는데요. 심은경은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2010년 9월 미국 피츠버그 소재의 고등학교를 거쳐 뉴욕의 '프로페셔널칠드런스쿨'에 입학했습니다. 다소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심은경은 "새로운 경험과 교양을 쌓고 싶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면서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소양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또 심은경은 미국 유학 중 강형철 감독의 제안으로 영화 '써니'에 출연하게 되면서 연기 활동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촬영 당시 강 감독은 "이제 연기는 나하고만 이야기하자"라고 제안해 이전까지 심은경에게 스승이자 매니저였던 엄마와 떨어져 온전히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지요.

다만 영화 '써니'의 개봉을 앞두고 심은경은 영화 홍보차 귀국했다가 때아닌 악성 루머에 시달려 잠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심은경이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는 소문이었는데요. 2007년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통해 이지아의 아역으로 출연하고 2008년 서태지와 광고에 동반 출연한데다 서태지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공개하기까지 너무 많은 우연이 겹친 탓에 억측이 제기된 것이었지요.

하지만 영화 '써니'가 개봉한 후 심은경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루머나 사생활이 아닌 그의 탁월한 연기력과 배우로서의 성장 가능성으로 옮겨갔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는 물론 걸쭉한 욕설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심은경은 더 이상 '아역 출신'이라는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영화 '광해'까지 유학 생활과 연기 활동을 균형 있게 병행한 심은경은 2013년 졸업하고 귀국하자마자 또 다른 작품의 촬영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배우 심은경의 대표작 '수상한 그녀'가 세상에 나왔지요. 원톱 주연으로 작품을 이끌어간 심은경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겉모습은 20대이지만 속은 70대인 주인공을 적당히 유로 머스 하게 표현했고 직접 노래까지 불러 매력을 발산했지요.

덕분에 해당 작품은 866만 관객을 돌파했고 심은경은 그해 부일영화상과 춘사영화상 그리고 백상예술대상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대세 배우가 된 심은경의 차기작에 쏠렸지요.

하지만 21살 심은경에게 너무 큰 기대는 부담이 되었던 걸까요? 심은경은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에서 생애 처음으로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아역시절부터 믿고 보는 연기로 손꼽히던 심은경은 일본 원작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우에노 주리와 비교되며 큰 질타를 받아야 했는데요. 다만 원작을 리메이크하면서 드라마 자체가 코미디인지 정극인지 헷갈릴 정도로 과장되고 모호한 설정을 이어가면서 심은경 아니라 누가 맡아도 소화 가능한 배역이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심은경은 "작품을 선택한 후 대중을 많이 의식했다"라며 "내 방법대로 연기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잘못이다.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라고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더불어 앞서 '써니', '광해', '수상한 그녀'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최연소 흥행 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 독이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작품을 성공시키고 연기를 잘해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자만했던 것 같다. 연기에 대한 본질을 너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성공만 생각하고 연기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기계처럼 연기했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갈등이 많았다.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거듭 고민했다"라며 슬럼프로 힘들었던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다행히 고민 끝에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마음먹었다는 심은경은 영화 '걷기왕'에서 무한 경쟁시대에서 욕심 없이 소박한 행복을 바라는 여고생 만복 역을 맡아 진솔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해당 작품을 하는 동안 심은경은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후 영화 '조작된 도시', '특별도시', '염력', '궁합'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되찾은 심은경은 충무로의 캐스팅 1순위가 된 그 순간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경험과 교양을 쌓기 위해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던 일본 영화계에 진출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배우로서의 명성과 입지를 이용한다면 일본 진출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심은경은 애초에 커리어를 위한 도전이 아닌 경험을 위한 경험을 목표로 했기에 온전히 신인배우로 시작했습니다. 2017년 일본 매니지먼트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후 일본어로 연기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일본의 연극 무대에 서며 연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영화계에 데뷔한 심은경은 데뷔작으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는데요. 연이어 출연한 영화 '블루 아워'로 제34회 다카사키 영화제의 최우수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일본 영화계의 떠오르는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최근 심은경은 국내에서 드라마 '머니게임' 촬영을 마쳤고 이어 일본 영화 '동백 정원'의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심은경을 두고 경직된 양국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는데요. 커리어보다는 소양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배우 심은경에게 정치적 문제는 걸림돌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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