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난해서 자식 먼저 보낸 부모에게 최근 크게 효도 중이라는 가수의 수입 수준

요즘 세대에게 가난은 어떤 의미일까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것, 나는 등록금이 없어서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는데 어느 집안 자제는 유학 다녀와서 쉽게 취업이 되는 것, 내 집 마련은커녕 결혼자금조차 없어서 결혼을 미루는 처지.

가난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요즘 세대에게 가난이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종류의 것은 아닌데요. 우리 윗세대만 해도 가난이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이었지요. 한편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가 어린 시절 겪은 가난을 고백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무속인 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던 가난

데뷔 7년 만에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 주인공은 바로 가수 송가인입니다. 송가인의 어머니가 국가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송순단이라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인데요. 송가인은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운 직업도 아닌데 숨길 이유가 없다'라며 당당히 밝혀왔습니다.

다만 무속인 어머니와 살아온 송가인의 어린 시절은 가난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많은데요. 얼마 전 '아내의 맛'에 출연한 송가인의 부모는 과거 곤궁한 살림 탓에 병원비 낼 돈이 없어 100일을 갓 넘기고 떠나보낸 둘째 아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가난으로 힘겨운 삶을 물려주기 싫었던 송가인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무속인의 운명을 따라갈까 봐 항상 걱정했는데요. 특히 송가인의 둘째 오빠와 송가인이 끼가 있는 것을 걱정했고 무속인의 끼를 국악 쪽으로 풀어나가길 바랐습니다.

실제로 송가인의 오빠는 아쟁 연주자가 되었고 송가인은 중앙대 음악극과를 전공해 판소리를 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400~500만 원이었고 송가인의 부모님은 농사와 굿을 병행해 자녀들을 뒷바라지했습니다.

또 송가인이 지난 2017년 서울 가락동의 보증금 1억 원, 월 20만 원짜리 빌라로 이사하는데 모자란 돈을 보태기 위해 어머니가 분신 같은 굿당까지 팔아 돈을 보탰다고 하니, 미스트롯 우승 발표 직전 송가인이 "부모님 돈을 너무 많이 가져다 써서 미안하다"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될 만도 합니다.

감 좋은 어머니 뜻대로
전국노래자랑 입성

국악 대회에서 장관상까지 탈 정도로 촉망받던 국악인 송가인은 어머니의 권유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게 되면서 트로트를 만났는데요. 2010년 송가인의 어머니는 전국노래자랑이 진도에서 열린다는 공지가 뜬 걸 보고 서울에 있는 송가인에게 날마다 전화를 해서 나가보라며 재촉했습니다.

당시 송가인은 국악 극단에 들어가 어린이 국악 뮤지컬도 하고 프리랜서로 국악 공연을 하는 등 국악인으로서 꽤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요. 크게 내키지 않았고 함께 국악을 하는 친구들 보기에도 창피한 마음도 있었지만 '감 좋은' 무속인 엄마가 그럴 땐 이유가 있겠다 싶어 나갔다가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때만 해도 송가인에게 트로트는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재미 삼아 불러본 게 다였는데요. 이후 '한 많은 대동강', '용두산 엘레지' 등 옛 노래에 관심이 생긴 송가인은 유튜브를 통해 독학으로 트로트를 섭렵했고 마침 전국노래자랑의 심사위원이었던 박성훈 작곡가가 송가인의 재능을 알아본 덕분에 2012년 첫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감 좋은 엄마 덕분에 시작하게 된 트로트이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건 혼자만이 견뎌야 하는 도전이었는데요. 2017년 3집을 낸 이후에도 2019년 미스 트롯을 만나기 전까지 거의 10년 가까운 무명생활을 이어와야 했지요. 당시 송가인은 혼자 커다란 의상 가방을 메고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 행사장에 다녔는데요. 겨울이면 차가 없어서 혼자 천막에서 덜덜 떨며 대기하기도 했습니다.

10년 무명에도 포기하지 않은 꿈
결국엔 성공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행사를 뛰어다녔지만 무명가수 송가인에게 돌아오는 건 푼돈뿐이었고 결국 공과금과 집세, 카드 대금을 막다 보니 어느새 은행 잔액이 바닥났습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송가인은 결국 남다른 손재주를 활용해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요.

동대문시장에서 부자재를 구입해 직접 만든 비녀와 뒤꽂이 등 마리 장신구들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판매한 것입니다. 부업으로 시작한 송가인의 비녀 판매는 국악 전공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꽤 쏠쏠한 수입을 안겨주었는데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트로트 가수로서의 꿈을 잃지 않은 송가인은 현역 가수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음악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엄마의 촉'이 발휘된 순간이 있었는데요. 바로 '미스 트롯'과의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당시 송가인은 명색이 현역 가수인데 일반인과 겨뤄 탈락하기라도 하면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선뜻 출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송가인의 어머니가 '느낌이 좋다'라며 출연을 적극 권유했고 결국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미스트롯 방송 초기부터 남다른 가창력으로 주목받은 송가인은 3개월의 고된 경연의 여정 끝에 마침내 우승자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었는데요. 프로그램 자체가 종편채널에 방영됨에도 불구하고 무려 18%의 시청률을 기록해 크게 화제가 되면서 송가인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장윤정보다 잘 나간다는
행사의 여왕

최근 '아는 형님'에 출연한 가수 장윤정은 '송가인은 왜 같이 안 왔냐'라는 MC들의 짓궂은 질문에 "걔가 나보다 더 바빠"라며 송가인의 인기를 대변해 주었는데요. 실제로 송가인은 요즘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출 뿐만 아니라 행사 섭외 1순위로 등극했습니다.

떠오르는 행사의 여왕으로 불리는 송가인의 수입 역시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데요. 송가인은 지난 5월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미스트롯 이후 행사비가 20배 가까이 올랐다던데 사실이냐'라는 MC 김구라의 질문에 수줍게 "네네"라고 대답해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더불어 어머니의 굿당을 팔아 마련했던 가락동 월세집을 정리하고 조만간 강남으로 이사 갈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지난 7월 일간 스포츠의 보도에 따르면 송가인의 행사비는 1500만 원까지 치솟았다고 하는데요. 내년 초까지 공연 요청이 밀릴 정도로 지역 수요가 대단해 자연스럽게 몸값이 상승했다고 합니다. 송가인은 지난 7월 공개된 스케줄만 해도 주 4회 이상 행사를 소화했는데요. 행사 스케줄로 벌어들인 수익만 해도 3억 가까운 수준입니다.

물론 아이돌 그룹에 비하면 다소 적은 금액으로 볼 수 있으나 트로트 가수로 천만 원을 넘어서는 것이 워낙 어려운 업계의 분위기로 볼 때 송가인의 행사비는 장윤정이나 홍진영 등과 함께 업계 최고의 대우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송가인의 소속사에서는 행사 페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인데요. 다만 지난 8월 나주 국제 농업박람회의 출연료 문제가 불거지면서 송가인의 페이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나주 국제 농업박람회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송가인이 농업박람회 출연료로 3500만 원을 받기로 한 것이 문제시된 것인데요. 2017년부터 연예인 홍보대사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데다 농업박람회 홍보비 전체가 2억 2000여 만원 밖에 되지 않는데 너무 큰 금액이 송가인에게 돌아간 것이 논란이 된 것이지요.

이에 대해 농업박람회 측은 송가인이 홍보대사이기 전에 대행사를 통해 섭외한 홍보 계약 당사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는데요. 논란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송가인은 3500만 원이나 하는 출연료가 공개된 셈입니다. 더불어 송가인은 홍삼, 뷰티 브랜드 등 광고 계약도 체결하고 있는데요. 행사와 예능, 광고계까지 점령한 송가인은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트로트 가수이자 핫한 스타가 되었습니다.

한편 앞서 첫 정산을 받은 송가인은 '아내의 맛'을 통해 어머니에게 효도 풀코스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미슐랭 레스토랑과 브랜드 옷에 이어 용돈 봉투까지 선물 받은 송가인의 어머니는 "나는 생전 메이커 못 해줬는데 미안 하제"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굿당까지 팔아가며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여전히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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