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한 일을 떠올린다면, 학원에 무단결석하고 친구와 놀러 간 경험이나 불을 끈 채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한 일이 떠오르기 마련일 텐데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 몰래 운동을 하다 들켰다면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운동을 하다 들켜서 혼났다는 주인공은 배구 선수 김희진입니다. 스스로 "팀 내에서 덩치를 맡고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멋진 체격을 가진 김희진 선수는 의외로 뱃속에서부터 허약했습니다. 실제로 김희진 선수의 어머니는 임신 3개월 즈음에 부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유산 진단을 받았는데요. 아이를 놓치기 싫었던 김희진 선수의 어머니가 한의원을 찾아 유산을 막는 한약을 먹으면서 어렵게 임신을 유지했다고.
힘들게 태어난 김희진 선수는 말도, 걷는 것도 또래보다 느린 탓에 유아기에는 부모님의 걱정의 받으며 자랐습니다. 다만 초등학교 무렵부터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는데, 육상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테니스 선수 출신인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출중한 운동감각까지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살을 빼겠다며 시작한 높이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첫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죠.
하지만 허약하게 태어난 딸이 힘든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것이 싫었던 부모님은 김희진이 운동하는 것을 극심하게 반대했습니다. 때문에 김희진은 "높이뛰기를 하지 말라"라는 부모님 말에 몰래 새벽에 혼자 연습을 하다가 들킨 적도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 12살 김희진은 "6학년 때까지만 해보게 해달라"면서 "전국체전에서 1위를 하면 계속하고 아니면 포기하겠다"라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높이뛰기를 시작한 지 단 1년 만인 2003년 김희진은 약속대로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대회 직후 김희진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나 운동 더 할 거야. 1등 했으니까 약속 지켜"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고 이후에는 김희진의 부모님도 더 이상 운동을 말릴 순 없었습니다. 대신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키가 165cm까지 자란 데다 점프력까지 어마어마한 김희진을 보고 농구, 배구 등에서 러브콜이 쇄도했고, 중앙여중 심재호 감독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배구로 전향했습니다. 당시 육상계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죠.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유망주라고 하지만 또래 선수들보다 2~3년 늦게 입문한 배구에 적응하기 위해 김희진 선수는 보다 혹독하게 훈련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대해 김희진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서울 기숙사에 살았다. 그래서 어리광을 많이 못 부렸다. 아이들이 어리광 부리는 것 보면 다 받아주려고 한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고 부모님을 설득한데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산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서 배구 훈련을 시작한 김희진 선수에게 어리광, 사춘기와 같은 단어는 사치에 가까웠을 것.
일찍부터 부모님의 품을 떠나 운동선수로서 커리어를 쌓는데만 집중한 김희진은 배구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2007년 봄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연이어 아시아 세계유스선수권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육상계에서는 여전히 아쉬워할지 모르나 김희진 선수는 이제 한국 여자배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대들보가 되었죠. 2012년 런던올림픽의 4강 신화에 기여한 막내 선수에서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으로 거듭난 것.
이에 대해 김희진은 최근 한겨레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생각이 많은 탓에 짧은 머리부터 신발 신는 순서까지 징크스가 많았다"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적어 플레이에 기복이 있었다. 늘 물음표를 띄워놓고 경기를 뛰었다"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늘 물음표를 띄웠다는 김희진의 겸손한 발언과 달리 그의 연봉은 겸손한 편이 아닙니다. 현재 IBK기업은행 소속인 김희진 선수는 연봉 3억 원에 옵션 5000만 원으로 계약한 상황인데요. 9년 연속 연봉퀸에 등극한 현대건설 양효진 선수(7억원), KCC인삼공사로 이적한 이소영 선수(6억5000만원), 한국도로공사 소속 박정아 선수(5억8000만원)에 이어 연봉랭킹 5위를 기록한 셈.
덕분에 김희진 선수는 최근 자가를 매입했다는 소식도 전했습니다. 예능프로를 통해 방송인 김나영의 집에 초대된 김희진 선수는 "진짜 와보고 싶었다. 내가 집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이번에 이사하는데"라면서 "기흥 부근에 자가를 마련했다. 첫 자가. 대출이 많이 끼였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금융회사 소속팀인 것에 대해 "대출이 좀 편하다"라고 덧붙였죠.